"4.3 강경진압" 박진경 대령 비석 옆에, 그의 행적 '진실' 내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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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강경진압" 박진경 대령 비석 옆에, 그의 행적 '진실' 내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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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박진경 추도비 옆 ‘4·3 역사 왜곡 대응 안내판’ 설치
국가보훈부 서훈 사유와 달리..."30만 희생시켜도 좋다"
"양민 여부 막론하고 도피하면 총살" 명령...학살 책임 기술
15일 박진경 대령 추도비 옆에서 열린 ‘4·3 역사 왜곡 대응 안내판’ 설치 행사.
15일 박진경 대령 추도비 옆에서 열린 ‘4·3 역사 왜곡 대응 안내판’ 설치 행사.

국가보훈부가 제주4.3 학살로 이어지게 한 강경진압의 책임이 있는 박진경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면서 큰 파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주에 있는 박진경 비석 옆에 그의 4.3 당시 행적을 담은 '진실'의 알림판이 세워졌다.  

박진경 대령을 미화시키는 등의 역사 왜곡행위에 강력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15일 오후 박진경 대령 추도비 옆에서 제주4·3의 진실을 담은 ‘4·3 역사 왜곡 대응 안내판’을 세우는 행사를 가졌다.
 
안내판 설치는 최근 4·3 관련 왜곡 현수막 게시, 영화 상영, 왜곡 발언, 표지석 설치 등 제주4·3의 역사를 왜곡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제주4·3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고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히 국가보훈부가 4.3학살의 책임이 있는 박진경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는 어처구니 행정행위를 하면서 정부를 향한 제주도민의 분노가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안내판은 정부의 잘못된 판단을 강력히 지적하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15일 박진경 대령 추도비 옆에서 열린 ‘4·3 역사 왜곡 대응 안내판’ 설치 행사.
15일 박진경 대령 추도비 옆에서 열린 ‘4·3 역사 왜곡 대응 안내판’ 설치 행사.

박 대령의 행적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관계를 후대에 알린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이날 설치된 안내판에 새겨진 '바로 세운 진실’의 내용은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등을 토대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작성됐다고 설명했다. 

1945년 8월 광복 이후 정세와 1947년 3월 관덕정 경찰 발포 사건, 1948년 4월 무장봉기 등 시대 상황과 함께 1948년 5월 입도한 박진경 대령의 약 40일간 행적과 박진경 대령을 암살한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의 이야기도 포함됐다.

박진경이 제주도에서 40일 남짓 강경진압 작전을 펼친 내용에서부터, 법정 증언을 바탕으로 해 "30만 도민을 희생시켜도 좋다", "양민 여부를 막론하고 도피하는 자에 대하여 3회 정지명령에 불응자는 총살하라고 명령했다" 등의 박진경 발언 사실도 기재했다.

박진경 대령이 국가유공자가 아니라, 4.3 강경진압의 책임을 묻고 단죄를 해야 할 대상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오영훈 지사,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 박호형 도의회 행정자치위원장, 하성용 도의회 4·3특별위원장, 김창범 4·3유족회장 등 4·3 관련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행사는 안내판 설치 취지 및 경과 보고에 이어, 박진경 대령 암살범의 마지막을 그린 강덕환 시인의 ‘박진경 암살범 총살기’ 시극 공연 순으로 진행됐다.

15일 박진경 대령 추도비 옆에서 열린 ‘4·3 역사 왜곡 대응 안내판’ 설치 행사.
15일 박진경 대령 추도비 옆에서 열린 ‘4·3 역사 왜곡 대응 안내판’ 설치 행사.

오영훈 지사는 “박진경은 ‘제주4·3진상보고서’에서 강경 진압의 주범으로 기록된 인물”이라며 “대한민국 국민을 학살한 주범에게 국가유공자 증서가 발급되는 현재의 잘못된 제도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제주도는 앞으로도 제주4·3의 진실과 평화·인권의 가치를 훼손하려는 시도에 단호히 맞설 것”이라며 “진실을 향한 제주의 77년간의 여정이 다음 세대에 온전히 기억될 수 있도록 도민 모두가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제주도는 4·3 역사 왜곡 논란 시설물인 경찰지서 옛터 표지석과 북촌리 학살을 주도한 함병선 장군 공적비 등에 대해서도 관계기관 협의를 통해 안내판 설치 또는 이설을 순차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15일 박진경 대령 추도비 옆에서 열린 ‘4·3 역사 왜곡 대응 안내판’ 설치 행사.
박진경 대령 추도비 옆에서 열린 ‘4·3 역사 왜곡 대응 안내판’ 설치 행사에서 입장을 전하고 있는 오영훈 지사. 

그럼에도 국가보훈부는 지난 11월4일 ‘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 위에 이룩된 것이므로 이를 애국정신의 귀감으로 삼아 항구적으로 기리기 위하여’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그를 국가유공자로 지정했다. 

앞서 국가보훈부는 지난 11월 4일 ‘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 위에 이룩된 것이므로 이를 애국정신의 귀감으로 삼아 항구적으로 기리기 위하여’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증서를 발급했다. 

보훈부는 "유공자 증서 발급은 유족의 신청에 대해 국가유공자법 제 4조 및 6조에 근거한 행정처분이었다"며 법 절차에 의한 정당한 지정이었음을 강조했다. 보훈부의 논리대로라면 4.3당시 민간인 학살 지휘 책임자 누구나 무공수훈훈장만 있다면 국가유공자 지정 문제 없다는 것이다.  

박 대령은 1948년 제주4.3 당시 제주도민들에 대한 강경진압 작전을 벌이다 부하들에게 암살당했는데, 이후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전몰군경이라는 이유로 을지무공훈장에 추서됐다. 전시에 공적을 세워 무공훈장을 받은게 아닌, 사실상 민간인들에 대한 강경진압을 벌인 공적으로 훈장을 받은 셈이다. 

보훈부의 이해못할 해명과, 권오을 장관의 유공자 지정철회 요구 거부에 도민여론이 악화되자 이재명 대통령은 15일 국가유공자 서훈 취소 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헤드라인제주>

15일 박진경 대령 추도비 옆에서 열린 ‘4·3 역사 왜곡 대응 안내판’ 설치 행사.
 ‘4·3 역사 왜곡 대응 안내판’ 설치 행사에서 입장을 전하고 있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다음은 박진경 대령 비석 옆에 세워진 '바로 세운 진실' 안내판에 담긴 내용(전문).
 
박진경과 제주4.3                                   
 
우리 민족은 1945년 8월 일제로부터 해방됐지만, 곧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됐다. 북위 38도선 남쪽을 점령한 미군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때까지 3년간 군정을 실시하며 직접 통치했다. 미군정은 친일파를 다시 등용한데다 누적된 실책으로 민심을 잃었고, 이에 1946년 10월 경상북도 대구를 중심으로 큰 봉기가 일어나 전국적으로 주민과 경찰 2백 명가량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제주에서는 주민들이 잘 참아내 인명피해 사건이 없었다. 

그러나 1947년 3월 1일 제주읍 관덕정 앞에서 열린 미군정 규탄 시위 때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6명이 숨지자 큰 혼란이 벌어졌다. 주민과 공무원이 총파업하며 항의하자, 미군정은 느닷없이 “제주도민은 70%가 좌익”이라며 경찰과 서북청년회 등을 동원해 탄압했다. 1년 동안 2,500여 명을 잡아들여 고문했고, 1948년 3월에는 경찰에게 고문받던 사람이 숨지는 사건이 잇따랐다. 

이에 1948년 4월 3일 ‘경찰과 서북청년회 등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남한만의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통일정부 수립’을 기치로 350명의 무장대가 경찰지서를 습격했다. 그런데 미군정은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던 김익렬 연대장을 전격 해임하고 박진경 중령을 새 연대장으로 임명했다.
 
박진경은 1948년 5월 6일 제주도에 와서 40일 남짓 강경한 진압 작전을 벌였고 그 대가로 상관을 앞질러 대령으로 특진했다. 그 무렵 미군 비밀보고서에 “3,000여 명이 체포됐다”고 기록될 정도로 박진경은 무리한 작전을 전개했다. 한 언론은 ‘포로’로 끌려오는 이들이 “12~13세 되는 소년이며 60이 넘은 늙은이며 부녀자”라며 한탄했다. 강경 작전을 펴던 박진경은 결국 6월 18일 부하인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에게 암살됐다.

손선호는 “30만 도민에 대한 무자비한 작전 공격 명령”이 암살 동기라면서 “박진경이 15세가량 되는 아이가 그 아버지의 시체를 껴안고 있는 것을 보고 무조건 살해했다”고 말했다. 박진경의 작전참모 임부택 대위도 “박진경 연대장이 조선 민족 전체를 위해서는 30만 도민을 희생시켜도 좋다. 양민 여부를 막론하고 도피하는 자에 대하여 3회 정지명령에 불응자는 총살하라고 명령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2003년 정부의 공식 보고서를 통해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따라서 아직 제주4·3이 끝나지 않아 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던 1952년에 군경원호회 명의로 세워진 ‘박진경 대령 추도비’의 내용은 일부 사실과 맞지 않는다. 또한 여전히 박진경을 미화하며 4·3을 왜곡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 이를 바로잡고자 안내판을 세운다.
 
2025년 12월 15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희생자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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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진실 2025-12-18 12:10:59 | 211.***.***.11
"30만명의 제주인을 모두 죽여도 좋다"라는 명령을 내린것은 박진경 당시 중령이 아닌 미군정 산하 경무부장 조병옥의 명령이었으며 4.3 진상보고서는 이를 배제하고 철저히 날조와 왜곡으로 이루어져있다.

p.s : 당시 남로당 공산주의 유격대는 일본군복과 일본도로 무장하여 돌아다니면서 본인들의 주장에 동조하지않거나 쁘락치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임산부의 배를 갈라 죽이고 마을을 지키기위해 보초를 서는 13살 아이의 팔다를 잘라 죽이는 등 제주도민들에게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이게 진실 2025-12-18 12:07:47 | 211.***.***.11
제11연대 고 박진경 대령은 제주4·3사건을 슬기롭게 진압할 수 있는 유능한 장교였으며 선 선무공작, 후 진압작전을 전개하였다. 작전에 돌입하기 직전 각급 지휘관에게 “100명의 폭도(남조선노동당 인민해방군)를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양민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지시와 동시에
“주민들의 민심을 돌리기 위하여 단위 대장들에게 선무공작을 강조하였다”라는 긍정적인 평가는 그의 부하들(채명신 전 주월한국군 사령관)이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