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실무위원들도 '격노'..."제주도정 입장은 뭔가?"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4.3관련 단체는 물론, 제주4.3실무위원회 내부에서도 이번 행정자치부의 사실조사 실시 요청을 '4.3 흔들기'로 규정하고 강력히 규탄하고 나섰다.
이번 논란은 행자부가 지난해 12월23일 제주도에 '제주4.3 민원해결을 위한 사실조사'를 요청하면서 촉발됐다. 위패봉안소에 모셔진 신위 중 53명에 대해 사실조사를 하고 1월29일까지 그 결과를 제출하라는 것이다.
이는 국무총리가 위원장으로 있는 제주4.3중앙위원회에서 제주4.3특별법 규정에 따라 결정한 4.3희생자 결정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이 결정에 불복하는 보수단체의 민원제기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어서 공분을 사고 있다.
특히 지난해 초 행정자치부 장관과 차관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 대통령이 참석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보수단체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불량위패'를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러한 4.3희생자 사실조사 요청 공문은 지난해 말 통보됐으나, 제주도정은 이를 공개하지 않다가 뒤늦게서야 이 사실을 인정해 화를 키웠다.
6일 제주도청에서 열린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실무위원회(위원장 원희룡 제주도지사) 회의에서는 상당수 위원들이 사실조사 자체가 제주4.3특별법에 반하는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양동윤 위원은 "국민으로서 민원제기를 할 수 있다고 보지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은 법률에 의해, 법치에 의해 다뤄져야 한다"면서 "민원도 예외일 수 없다. 사실조사라는 것이 실무위에서 다뤄져야 할 사안인지 의문"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즉, 4.3특별법에 의해 희생자가 결정됐음에도, 이에 불복해 민원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위법하다는 주장이다.
양봉천 위원은 "때만 되가면 보수단체들이 이러는 것은 유족으로서는 참 듣기 실은 말 중 하나"라며 "이는 부관참시(剖棺斬屍,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 주검을 벤다는 의미의 고사성어)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것 아니냐. 이런 행동이 있어선 안된다"고 불쾌한 심경을 내비쳤다.
김동만 위원도 "4.3을 관용과 화해의 정신으로 풀어가자고, 도지사가 제시했는데, 일부 희생자에 대해 사상검증을 하자는 얘기를 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한 후, "제주를 대표하는 중앙위원회가 왜 이에 동의했는지도 의문"이라고 의아해 했다.
2시간에 걸치 회의에서 다수 위원들이 이번 사실조사에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나서자,, 추후 이 내용을 재차 논의하는 것으로 해 회의는 마무리됐다.
제주에서는 이 4.3희생자 사실조사 문제와 관련해 강력한 규탄성명들이 쏟아지고 있다.
제주4.3연구소는 6일 입장을 내고, "정부의 4‧3흔들기가 올해도 또다시 시도되고 있다"며 "4.3희생자 사실조사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 단체는 "4.3진상조사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지 16년, 희생자 결정이 이뤄진지 10년이 넘고 있지만 여전히 보수세력들의 4.3흔들기는 계속되고 있다"며 "4.3특별법에 따른 희생자 결정과정에서 이미 조사를 끝낸 것을 민원을 이유로 또다시 재조사를 한다면, 앞으로도 민원이 제기될 때마다 계속 그렇게 할 것인가"라고 반박했다.
또 "정부가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인 4.3희생자들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인가"라며 "4.3유족들은 진상규명이 시작된 이후 줄기차게 화해와 상생의 대정신을 견지해왔는데, 가해자 처벌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제주4.3연구소는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을 다시 조사해서 문제가 있으니 위패를 내리고, 희생자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면, 이는 희생자는 물론 그 유족들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며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라"고 일침을 가햇다.
이어 제주도정의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이 단체는 "지난해 12월23일 사실조사 요청 공문이 왔으나,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다가 취재진의 요구에 사실조사 요청을 시인했다"며 "사실조사는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제주도가 도민의 입장이라면, 행자부의 사실조사 요청을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사실조사는 사실상의 사상검증"이라며 "4.3특별법에 따라 명예회복이 된 유족들에게 보수단체의 민원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사실조사를 하는 것은 국가로부터 4.3희생자로 결정받은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인권침해를 저지르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더민주당 제주도당은 "행정자치부가 4.3희생자 사실조사를 요구한 것은 4.3의 진실을 부정하는 세력의 행위에 동조하는 것이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로 보여진 역사왜곡의 서막"이라고 주장하며 정부에 강력히 성토했다.
더민주당은 "이미 국가차원의 진상규명을 토대로 이뤄진 희생자 결정을 무효라고 주장하는 일부 보수단체들의 소송이 법정에서 모두 패소한 상황에서 행자부가 나서서 사실조사를 요구하는 것은, 제주4.3을 정부 스스로 정당성 없는 이념논란으로 몰고 가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이번 행자부의 요구는 일부 보수세력이 주장하는 희생자 재심사를 위한 수순밟기"라며 "원희룡 지사는 4.3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행자부의 요구에 대해 당당히 이를 거부하라"고 요구했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의 김우남 위원장(제주시 을)은 "4.3을 둘러싼 이념적 대립과 분열이 극에 달했던 이명박 정권 시절에도 희생자 재심사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지난 18대 국회에서도 현행법에 의해서는 정부의 직권 등에 의해 4.3희생자에 대한 재심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4.3특별법 개정안이 한나라당 의원들에 의해 발의됐지만 야당 및 제주사회의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고 지적한 후 "4.3흔들기는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 뛰어넘고 있다"며 현 정부를 강력히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 정권은 법 개정을 통한 법적 근거의 마련도 없이 막무가내로 희생자 재심사를 추진하고 있다"며 "이는 그동안 한 목소리로 희생자 재심사를 반대해 온 유족을 비롯한 제주사회의 민의를 짓밟는 오만이자 제주도민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주장했다.
노동당 제주도당은 "정부가 제주4.3 희생자 53명에 대한 실태조사를 요구한 것은 반도민적 행태"라며, "그간 4.3 정신을 부정하는 수구단체들이 6차례 소송에 패소했음에도 불구하고 희생자 위폐철거와 진상보고서 부정 등을 주장하며 떼쓰듯 요구해온 4.3희생자 재심사를 정부가 받아들인 것은 4.3 왜곡 및 진실부정 시도"라고 주장했다.
노동당은 또 "4.3의 본질을 흐트리는 이번 희생자 재심사 요구는 질곡의 세월을 참고 살아 온 제주도민을 다시 한 번 고통과 좌절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는 위선적인 행태"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총선 후보들의 입장도 이어졌다. 서귀포시 선거구의 문대림 예비후보와 위성곤 예비후보의 강력한 비판 성명에 이어, 6일에는 제주시 갑 박희수 예비후보도 성명을 내고 "정부는 당장 재심사를 철회하고, 4.3의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사과하라"면서, "또한 원희룡 도정은 정부의 재심사 요구를 거부하고 도민들에게 제대로 해명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제주4.3 희생자 재심사 논쟁이 새해벽두 최대 이슈화되면서, 오는 총선에서 '4.3'은 다시 선거쟁점화될 전망이다.
한편 홍윤식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는 6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이에대한 강창일 의원의 질책성 질문이 이어지자, "행자부의 집행 절차를 다시 확인해 보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즉각 바로잡겠다"고 답했다.<헤드라인제주>
<박성우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