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밝히고 기억을 이어가는 일, 이제 교육이 함께해야 한다
제주와 전남의 교원들이 함께한 여순10·19사건 역사 현장연수에 참여했다. 여수와 순천의 거리와 골목, 희생자 추모 공간을 걸으며 1948년의 비극을 다시 마주했다. 제주4·3 유족인 나에게 이번 연수는 다른 지역의 역사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았다. 제주에서 시작된 아픔이 바다 건너 전남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 확인하고, 두 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과정을 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4·3 진압 출동 명령을 거부하면서 여순10·19사건이 시작되었다. 봉기는 순천 등지로 확산되었고,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좌우 대립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해방 정국의 혼란과 국가폭력, 그리고 무고한 주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함께 살펴야 한다.
가장 마음에 남은 곳은 여수 형제묘역이었다. 희생자들을 함께 묻은 그곳에서 이름을 새겨 놓고도 오랫동안 드러내지 못했던 유족들의 사연을 들었다.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이름을 가려야 했다는 것이다. 가족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조차 마음 놓고 할 수 없었던 세월이었다. 그 모습에서 제주4·3 유족들이 떠올랐다. 제주에서도 희생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침묵하며 살아온 가족들이 많았다. 지역은 달라도 유족들이 감내한 두려움과 상처는 닮아 있었다.
순천대학교 일대에서는 주민들을 운동장에 모아 놓고 누군가의 손가락질로 ‘부역자’를 색출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른바 ‘손가락총’이다. 누군가의 지목으로 생사가 갈렸던 역사는 오늘날에도 국가의 책임과 인간의 존엄에 대해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이번 연수에서 깊이 생각한 것은 제주4·3과 여순10·19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이다. 제주4·3은 유족과 지역사회, 언론과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증언과 자료를 수집하며 진실을 밝혀 왔다. 특히 제민일보의 기획연재 「4·3은 말한다」를 비롯한 기록과 조사 활동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여순10·19사건 역시 유족과 지역사회, 연구자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을 이어 가고 있다.
이제는 두 지역이 각자의 경험과 성과를 공유하며 함께 나아가야 한다. 제주4·3의 진상규명 경험이 여순10·19사건에 도움이 되고, 여순의 역사적 경험과 연구 성과 또한 제주4·3을 더욱 폭넓게 이해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유족과 연구자, 관계 기관들이 서로 협력한다면 남아 있는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배·보상 등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힘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번 연수에서 한 역사 교사는 5·18민주화운동 관련 역사교육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학생이 가족에게 물어본 뒤에야 자신의 친척이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가까운 가족의 역사조차 다음 세대에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 것이다. “가르쳐야 압니다.”라는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광주·전남의 더 많은 교사가 5·18민주화운동과 여순10·19사건의 역사 현장을 찾고, 학생들과 자료와 증언을 탐구하며 생각을 나누었으면 한다. 아울러 제주지역 교사들도 익숙한 지역의 역사에 안주하거나 관성적으로 교육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제주4·3을 비롯한 지역의 역사와 가족, 마을 공동체가 간직한 삶의 경험을 새롭게 살피고, 아직 기록되지 않은 증언과 이야기를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고령의 생존자와 유족들이 간직한 기억을 구술과 글,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번과 같은 역사 현장연수도 단순한 탐방이나 일회성 체험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참가 교사들이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내용을 각자의 소감문과 탐방 기록으로 정리하고, 이를 공동 문서로 엮어 서로 공유하는 활동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기록이 축적된다면 교사들의 역사 인식을 넓히는 것은 물론, 학생들과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소중한 교육자료가 될 것이다. 제주와 광주·전남 교사들이 서로의 기록을 나누고 공동 연구와 수업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면 평화·인권교육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역사는 기억하는 것만으로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기억을 증언으로 남기고, 증언을 기록으로 정리하며, 그 기록을 교육으로 이어 갈 때 비로소 다음 세대의 역사가 된다.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교사는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인 동시에 지역과 공동체의 기억을 찾아 기록하고 후세에 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교직의 긴 여정을 마무리해 가는 지금, 이번 연수는 역사교육의 책임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여수 형제묘역에서 이름을 가려야 했던 유족들의 아픔을 잊지 않으려 한다. 진실을 밝히는 일은 희생자의 이름과 존엄을 되찾는 일이며, 그 기억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은 우리 교사들의 몫이다.
제주4·3과 여순10·19사건이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경험을 나누며 함께 나아가기를 바란다. 현장에서 배우고, 삶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그 기록을 학생들과 나누는 교육이야말로 역사를 미래로 이어 가는 가장 소중한 실천일 것이다. >오승학 | 제주 중문중교사>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