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은 경계를 긋는다.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을 나눈다. 담은 사생활을 보호해 주는 관습적 경계이면서 자칫 불퉁댈 수 있는 너나들이의 사회적 거리를 확보해 준다. 담 너머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꿈을 움트게도 하고, 넘어야 할 장애를 딛고 서는 극복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담은 단절만이 아닌 소통의 통로이기도 하다. 적에 대항해야 할 때는 견고한 성을 쌓아 올리지만, 이웃 간에는 키 낮은 담벼락 위로 온기를 나누고 싸리 울타리는 삐그시 열려있어 바깥세상으로 들고난다.
청송으로 성묘 가는 길이면 송소고택에 들르곤 한다. 청송 심씨 바깥양반이 말을 탄 채 드나들던 솟을대문이 가문의 위세를 드러내듯 솟아있고, 사랑채와 안채, 부모와 자식의 공간, 학문이나 작업공간을 반듯한 담으로 둘렀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먼저 보이는 담이 헛담이다. 사랑채를 드나드는 양반네들 눈에 안채 식구들이 보이지 않도록 편안하면서도 지혜롭게 막아둔 내외담이다. 그런가 하면, 안채 뒤뜰 높은 담장에는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눈막이 구멍이 서넛 뚫려있다. 문을 열지 않고도 내방객을 살피는 구조라지만, 함부로 출입할 수 없던 안방마님이 바깥 구경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숨구멍이 아니었을까 싶어 애잔하다.

죽녹원을 비롯해 대나무로 유명한, 담양의 담장은 어떨까. 담양은 2007년 슬로시티 국제연맹이 아시아 최초로 지정한 창평슬로시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슬로시티의 중요한 요건은 그 지역의 전통과 생태가 보전되어 있는지, 전통 먹거리가 있는지, 주민에 의한 다양한 지역 공동체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지이다. 담양군 전체가 그렇지만, 특히 창평면 일대는 이들 세 조건을 충분히 충족하고 있어 슬로시티로 지정되었고, 마을에 이르러 세 갈래 물길이 만나는 곳으로 삼지내마을이라고도 불린다.
삼지내마을 담장은 정겹고 푸근하다. 큼직큼직한 기와집을 따라 이어지는 골목길이 넉넉해 느리게 걷노라면, 어느새 한가롭고 느긋해진다. 그 길을 작은 개울이 따라나서고 풀과 꽃이 오불오불 우거져 옛 마을 같은 그리움의 세계로 이끈다. 기와를 인 담장이 쭉 뻗었는가 하면, 휘돌아 가며 핏줄처럼 집집을 연결한다. 고즈넉한 옛 모습이 방학 때면 외사촌들과 뛰놀던 외가에 온 듯 아련하다. 돌로 쌓으며 사이사이 틈을 흙으로 메꿔 담장은 짱짱하고 단단하다. 그래선지 문을 열고 안으로 들면 바람을 막아주는 아늑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가 하면, 제주 돌담은 구멍이 숭숭하다. ‘돌챙이’가 담을 쌓을 때 이미 수많은 눈막이 구멍을 두어서다. 송소고택의 구멍과는 태생이나 용도가 사뭇 다르다. 집안으로 불어닥치는 손님은 드센 바닷바람이기에, 그 구멍은 바람의 힘을 분산시켜 돌담이 무너지지 않고 굳건히 설 수 있게 하는 지지대였다. 이렇듯 그 지역의 문화는 사람들의 삶의 모양과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형성되고 전승되어 지역마다 고유의 색깔과 결을 지닌다.
제주 돌담 쌓기는 화산섬의 특성과 주민들의 지혜로움이 결합한 전통 손기술이다. 이러한 전통 돌담 쌓기 석공을 '돌챙이'라고 부른다. 돌챙이는 크고 작은 현무암을 서로 맞물려 틈을 남기는 방식으로 강한 바람을 달랬고, 흙이나 접착제를 쓰지 않고 돌의 형태와 무게, 맞물리는 구조를 활용해 담장을 쌓았다. 그런 까닭에 좁은 골목에서 차량이 들이받아 담장이 허물어지는 일이 있어도 차근차근 다시 쌓으면 되는 거였다.

제주도는 이런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지난해 9월 '제주 돌담 쌓기'를 제주도 무형유산으로 지정했다.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 종목으로, 제주 전역에서 전승돼 온 보편적 기술이라는 점을 반영한 것일 테다.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제주의 전통 돌담 쌓기 기술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추가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라 한다. 새로이 유산을 등재하는 게 아니라, 이미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된 유럽 등 다국가 무형유산에 새로운 국가를 더하는 '확장 등재' 방식이다. 제주 또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돌담이 훼손을 피할 수 없는 시점에, 유산 등재를 계기로 지속가능한 보존 방안이 촘촘해졌으면 싶다. 길이 전승해야 할 제주의 정체성이므로.
제주를 더욱 제주답게 하는 돌담에는 치열하고 서러운 견딤의 미학이 흐른다. 갤쭉하거나 둥글거나 다양한 생김새의 밭두렁이 되어 굽이져 흐르는 밭담이 그렇고, 집집을 두른 골목의 돌담과 산담 또한 그렇다. 거기에는 척박한 땅에서 골라낸 돌을 옮겨 쌓고 또 쌓았던 제주 사람들의 숱한 고담함이 바람구멍마다 녹아있어서다. 빗물을 머금었다가 용천수로 흘려보내는 현무암처럼 제주 사람은 그 신산했던 삶을 안으로 삭였다가 마침내 승화시켜 주변과 어우러지는 색다른 풍광을 그림처럼 그려냈다,
바람이 드나드는 제주 돌담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다. 그런 연유로 봄날의 노란 유채꽃, 깊은 가을 귤밭의 황금빛 서정은 검은 돌담을 빼고는 미완성의 풍경일 뿐이다.

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는...
나만의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깊은 사유로 주변을 바라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보태려 했던 것은, 문화재와 어우러지는 봉사활동이었다. 창경궁을 둥지 삼아 ‘우리 궁궐 지킴이’로 간간이 활동 중이다.
이곳저곳을 둘레둘레, 자박자박 쏘다닌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레를 걷고 오름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사색의 오솔길을 오가며 사람 내 나는 이야기, 문화재나 자연 풍광, 처처 다른 그 매력을 소소하게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약력>
2016년《수필과비평》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원, 제주《수필오디세이》회원
수필집 《우리, 수작할까요》 발간

헛담이란 것을 첨 보는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