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월 29일은 세계심장연맹이 정한 ‘세계 심장의 날’이다. 심혈관질환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예방과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알리는 날이다. 그러나 이미 심장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당사자에게 이날은 개인의 건강관리만을 강조하는 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심장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가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이에 이번 세계 심장의 날을 맞아 심장장애인 자조모임 구성원들과 심장장애와 함께 살아가며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현재의 복지제도와 사회환경은 이러한 어려움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 함께 이야기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심장장애인의 삶과 권리를 다시 살펴보았다.
# 보이지 않아도 활동의 제약이 존재한다.
심장장애인의 건강관리는 일상을 지속하기 위한 기본적인 생활방식이다. 우리 심장장애인들은 약 복용과 정기검진, 식습관 관리, 충분한 휴식을 생활의 중요한 부분으로 두고 있다. 한 번에 많은 일을 하기보다 한 가지 일을 조금씩 나누어 몸 상태에 따라 쉬어가며 활동한다.
직장생활을 마치면 다른 활동을 이어가기에 부담이 커 충분히 쉬어야 하는 구성원도 있다. 가사와 사회활동에는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한다. 또 다른 구성원은 직장에서 심실빈맥이나 서맥, 가슴 통증이 나타나면 즉시 업무를 중단하고 귀가해 휴식한다. 이러한 활동 조절은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건강 상태에 따라 자신의 일상을 관리하는 자기결정이다.
# 장애를 설명해야만 하는 현실
심장장애는 외관만으로 판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제 활동의 제약까지 없는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한 구성원은 중학생 때 자전거로 등하교한다는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정말 심장이 좋지 않은 것이 맞느냐는 의심을 지속해서 받았다.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사실이 심장장애가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눈에 보이는 활동 하나가 장애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 것이다.
버스 교통약자석에 앉았을 때 다른 좌석으로 옮기거나 서서 가라는 말을 듣고 나서 자신의 건강 상태나 장애를 밝혀야만 했던 경험도 있다. 다른 구성원은 심장수술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젊고 건강해 보인다는 이유로 폭언을 들었다.
심장장애로 활동이 느리거나 힘을 쓰기 어려운데도 그 원인이 심장장애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 의아하게 여기거나 설명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 결과 당사자는 신체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자신의 장애와 몸 상태를 먼저 알려야 하는 상황을 반복해서 마주한다. 교통약자석과 휴식공간은 외관이 아니라 실제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장애 공개를 요구받지 않아야 한다.
물론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장애의 특성상 모든 시민에게 심장장애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심장장애를 비롯한 보이지 않는 장애에 대한 이해교육과 장애인식개선 교육이 강화된다면 시민들의 시각과 접근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행여 서로의 상황을 알지 못해 불편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외관만으로 상대방의 장애나 필요를 판단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먼저 생각하고 존중하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 이동권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현행 보행상 장애 기준에서 장애의 정도가 심한 심장장애인은 보행상 장애를 자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별도의 판정을 거쳐야 한다. 우리 모임에도 심장장애로 장애의 정도가 심한 판정을 받았지만 보행상 장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장애인전용주차구역과 제주 교통약자 이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구성원이 있다.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더라도 일반주차구역에서 목적지까지 먼 거리를 걸으면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체력이 소모된다. 이에 구성원들은 장애인전용주차구역과 교통약자 이동지원서비스의 이용기준에 심장장애인의 체력 저하와 건강상 위험이 실질적으로 반영돼야 한다고 공통으로 요구했다.
제주교통복지카드를 통한 버스요금 면제만으로는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요금 지원과 이동지원서비스 이용권은 서로 다른 문제다. 정류장까지 이동하고 버스를 기다리며 승하차하거나 서서 이동하는 과정의 어려움까지 고려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 장애유형 통제가 아닌 실제 필요를 기준으로
장애인복지는 어느 장애유형은 이용할 수 있고 어느 장애유형은 이용할 수 없는 방식으로 권리를 나누어서는 안 된다. 등록장애인이 공통으로 누려야 할 이동·건강·사회참여의 권리는 보편적으로 보장하고, 개별 서비스는 당사자의 실제 기능과 건강상 위험, 지원 필요를 기준으로 제공해야 한다.
사회참여의 제한은 체육활동에서도 나타난다. 자조모임의 한 구성원은 장애인 볼링선수 등록 가능 여부를 문의했지만 심장장애는 선수 등급분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안내를 받고 선수 활동을 포기했다. 실제로 2026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의 참가 장애유형에도 심장장애는 포함돼 있지 않다. “법적으로 등록된 장애임에도 장애인체육의 공식 참여체계에서 배제되는 현실은 장애유형에 따른 참여 기회의 모순을 보여준다.”
# 심장장애인의 권리 보장은 제도의 책임이다.
기본은 관리다. 심장장애인이 지속적으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외래진료와 약제비 부담을 완화하고 전문치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용할 수 있는 이송과 병원 동행 체계를 마련하고, 심박수 이상이나 낙상 등을 감지해 119와 지정 연락처에 알리는 응급알림기기의 지원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심장재활은 새로 만들어야 하는 개념이 아니다. 현재 건강보험에서도 일정한 심장수술·시술 환자, 선천성 심장질환자, 약물로 조절되는 부정맥 환자 등을 대상으로 교육·평가·운동치료를 포함한 심장재활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필요한 환자가 적절한 시기에 제도를 안내받고 이용할 수 있도록 의료기관의 진료 연계와 접근성을 강화해야 한다.
심장장애에 관한 교육과 공공 캠페인이 필요하다. 교육은 단순히 심장장애에 대한 지식과 정보보다 학교와 직장, 대중교통과 공공서비스 등 지역사회에서의 보이지 않는 장애를 이해하고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도록 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심장장애인은 선의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권리의 주체다.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장장애인의 필요와 권리가 복지제도에서 외면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 심장장애인 자조모임은 세계 심장의 날이 심장 건강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받아 온 심장장애인의 삶과 권리를 우리 사회가 함께 확인하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김수환/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심장장애인 자조모임 ‘Heart(심장)-Right(권리)’ 리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