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 (31) 덕을 살피는 관덕정, 섬사람의 삶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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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 (31) 덕을 살피는 관덕정, 섬사람의 삶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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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관아 전경. (사진=제주관광공사)
제주목관아 전경. (사진=제주관광공사)

관덕정은 제주 문화유산으로 웅장하고 늠름하다. 사방이 탁 트인 단층 구조로 군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다. 1448년 세종 때 지었고, 제주에 남아 있는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제주목관아의 부속건물이다. 관아마다 활을 쏘는 용도로 관덕정이라는 정자가 세워졌으나, 대부분 유실되었고 창경궁에 있는 관덕정과 함께 같은 시기에 지어진 두 관덕정만이 긴 세월 의연하다.

제주목사 신숙청이 관덕정을 축조할 때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국의 이름난 목수들을 모아서 지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다 지으면 무너지고 다시 지으면 또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목수들이 심기일전 다시 공사에 열중하는데 한 노인이 지나가다 "또 무너지겠군"하고 중얼거렸고 몇몇 목수가 이를 들었으나 그러려니 했다.

역시나 다시 무너지자, 목수들이 수소문하여 노인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 노인의 묘책이라는 것이 "상량식을 할 때 닭이나 돼지는 절대로 안 되고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만 한다."라는 납득 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목수들이 깜짝 놀라 손을 휘젓자, 노인은 "아무 날, 상량식을 준비할 때 솥 장수가 그 앞을 지나갈 테니 큰소리로 '상량'이라 외치라."고 하며 방법은 그것뿐이라 했다.

'탐라순력도'의 관덕정 모습. (사진=제주관광공사)
'탐라순력도'의 관덕정 모습. (사진=제주관광공사)

목수들은 내심 찜찜했으나 달리 방도가 없어 상량식 날만을 기다렸고 노인 말대로 큰 솥을 짊어진 솥 장수가 지나갔다. “상량!”하고 여럿이 큰 소리를 지르자, 무슨 일인가 싶어 머리를 들어 올리려던 솥 장수는 휘청거리며 무거운 솥에 깔리고 말았다. 그를 제물로 바치니 관덕정이 무너지지 않았고 무사히 완공할 수 있었다는 것. 지금 시각으로는 황당무계할 수밖에 없으나, 웅대한 건물을 짓느라 엄청난 희생과 노력, 피할 수 없는 고난이 많았다는 걸 담은 설화가 아닐지 짐작해 본다.

창경궁 춘당지 옆 관덕정은 숲속 산자락에 홀로 서 있다. 궁내 활터의 역사와 임금의 휴식이 공존하는 뜻깊은 정자로, 활쏘기라는 무예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겸손과 덕성을 기른다는 군자의 덕목을 담고 있다. 제주 관덕정에 비하면 아담하고 조촐하다. 세종 때 지어진 이후 남쪽에는 잠단(蠶壇)도 세워졌다. 성종비 ‘공혜왕후 한 씨가 잠례를 거행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조선 전기에는 누에 관련 행사장으로도 쓰인 모양이다. 임진왜란 때 불탄 후 인조 때 그 자리에 다시 세웠고, 앞 빈터에서는 군사훈련과 무과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창경궁이 창경원이 되면서 많은 전각이 헐렸음에도, 관덕정은 모습이 바뀐 채 살아남았다.

정조는 창덕궁과 창경궁 후원의 풍경 열 군데를 뽑아 상림십경(上林十景)을 지정했다. 그중 하나가 관덕정의 가을을 읊은 ‘관덕풍림(觀德楓林)’이다. 오색단풍이 너울거리는 춘당지 일대를 신선이 사는 삼청동에 비유할 만큼 창경궁의 후원은 예나 지금이나 그 향취가 그윽하다.

과녁이 울릴 때면 화살이 정곡을 맞히는데

구름과 안개 장막이 선경을 에워쌌네

삼청동의 물색은 원래 이러하기에

제군과 함께 취하기를 금치 않노라

창경궁 관덕정. (사진=나무 위키)
창경궁 관덕정. (사진=나무 위키)

관덕정 뒤 제주목관아는 제주의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지로서 꽃을 피웠다. 외대문과 중대문을 지나 들어가면 넓은 부지 위에 거느리고 있는 건물과 건물지가 상당하다. 부질없는 욕심이라 해도 빈 건물지마다 늠름한 옛 모습이 복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목사의 집무 공간인 동헌은 연희각이라는 이름으로 위용을 자랑한다. 한편에는 아담한 귤림당이 있다. 귤밭에 둘러싸여 호젓하고 낭만적인 이곳에서 틈틈이 시와 더불어 거문고를 타고 바둑을 두던 목사의 휴식처였다.

관아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홍화각은 제주의 군사행정을 총괄하던 절제사의 집무 공간이었다. 제주는 전라 관찰사와 절제사의 지휘를 받았으나, 전라도에서 먼 지리적 특성상 제주목사가 절제사의 군사행정까지 위임받아 겸하였으니, 목사의 업무공간이기도 했겠다. 창경궁의 정문이 ‘임금의 교화가 널리 퍼진다’라는 홍화문이어선 지 홍화각에서 애민의 내심을 읽는다. 관찰사나 조정의 영향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던 당시 제주목사의 권한과 행정력은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쳤으리라. 수두룩한 선정비와 영세불망비에 기록된 공적들이 ‘홍화’에 담긴 의미처럼 참으로 진실이기를 바라본다.

관덕정은 공항에서 가까운 도심에 있어 제주에 갈 때마다 두세 번은 마주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중심 공간이어서 관덕정 광장에는 제주도민의 역사와 삶의 흔적이 오롯이 새겨져 있을 테다. 제주에서 최초로 오일장이 열린 곳도 이곳이요, 조선 말의 빈번했던 민란의 최종 종착지도 이곳이어서 피의 단죄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특히 제주 4·3사건의 도화선이 된, 어느 해 3·1 집회 역시 이곳에서 사건화되었으니, 격동의 공간이 분명하다. 4·3사건 이후 제주 지역의 시민과 학생들이 끊임없이 전개한 민주화운동과 진상 규명 운동도 관덕정 광장에서 시작됐고, ‘새 철드는 날’이라 하여 굿을 열었던 탐라입춘굿 또한 단절된 지 팔십여 년 만에 복원되어 이곳에서 매년 치러진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기면 절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관덕정. 광화문 광장과도 닮은 이곳은, 담담한 모습 이면에 섬사람의 시린 삶과 아픈 편린들이 오롯이 스며있는 것만 같다.

활을 쏘아 덕을 살핀다는 의미를 새기며 활시위를 한껏 당기던 곳. 모진 세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 관덕정이 지금은 문화 공연장으로서 활기를 불러일으킴과 아울러 역사적 의미를 새기는 이들이 찾는 역사 관광의 허브가 아닌가 싶다.

관덕정 앞 광장이 마라톤 경기의 출발점과 골인 지점이듯이, 제주 사람들이 희망의 씨앗을 틔우는 곳이요, 그 씨앗이 잉태한 과실이 향기롭게 익어가는 풍요로운 터였으면 좋겠다. 서로 보듬고 살피는 진솔한 삶의 공간이므로.

관덕정 . (사진=제주관광공사)
관덕정 . (사진=제주관광공사)

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는...

수필가 배공순
수필가 배공순

나만의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깊은 사유로 주변을 바라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보태려 했던 것은, 문화재와 어우러지는 봉사활동이었다. 창경궁을 둥지 삼아 ‘우리 궁궐 지킴이’로 간간이 활동 중이다.

이곳저곳을 둘레둘레, 자박자박 쏘다닌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레를 걷고 오름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사색의 오솔길을 오가며 사람 내 나는 이야기, 문화재나 자연 풍광, 처처 다른 그 매력을 소소하게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약력>

2016년《수필과비평》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원, 제주《수필오디세이》회원

수필집 《우리, 수작할까요》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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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방 2026-10-01 07:30:41 | 221.***.***.74
제주 갈때 어쩌다 지나치던 멋진 곳인데요 .
역사적 배경을 알고나니 다르게 느껴집니다.
같은 이름의 정자가 창경궁에도 있다니 아름답게 단풍들 때 가봐야겟어요.
여러번 갔지만 있는지도 몰랐거든요.
감사합니다.

설희 2026-10-09 23:08:34 | 221.***.***.74
의미있는 문화재를 조명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