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슨 일 하고 있어요?”
우리는 이 질문에 대부분 직업을 답한다. “회사에 다녀요”, “공무원이에요”, “자영업을 해요” 그래서 직업이 없으면 ‘일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영어에는 일자리를 뜻하는 job과 일을 뜻하는 work가 있다. Job이 내가 고용되어 있는 ‘자리’라면, work는 무언가를 하고 사회에 기여 하는 ‘행위’에 가깝다.
우리는 그동안 job이 있어야만 work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직업이 없으면 일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했고, 특히 중증장애인은 기존 노동시장에서 오랫동안 ‘일할 수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어 왔다.
하지만.
아이를 돌보는 일, 가족을 간병하는 일,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일도 분명 사회 가치를 만듦에도 임금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는 이러한 활동을 ‘일’의 범주에서 제외해왔다. 임금이 없다고 해서 일의 가치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일자리의 전환’이 아니라 ‘일의 전환’을 이야기해야 한다.
특히 AI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앞으로 기존의 많은 일자리가 변화하거나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얼마나 많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것인가”만 고민해야 할까.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사람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활동은 사회에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가?”
“그 가치를 우리는 어떻게 인정하고 얼마나 보상할 것인가?”
AI가 인간의 반복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주목해야 한다. 돌봄, 공감, 관계 맺기, 권익옹호, 공동체를 연결하고 변화시키는 활동은 단순한 생산성 만으로는 측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지속시키는 중요한 힘이다.
장애인의 일도 마찬가지다. 직업을 갖지 못했다고 해서 일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 접근성을 살피고, 스스로 권익옹호 활동을 한다면 그것 역시 분명한 work다.
다만 우리는 지금까지 그것을 ‘일’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중증장애인 권리 중심’ 일자리가 중요하다.
‘권리 중심 일자리’란 중증장애인에게 장애인식개선, 권익옹호, 문화ㆍ예술 활동 등을 직무로 제공하는 일자리를 말한다. ‘권리 중심 일자리’는 장애인을 기존 노동시장에 억지로 끼워 넣기 보다, 장애인이 살아온 경험과 관점, 사회를 바라보는 목소리 자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는 장애인 일자리 정책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일’이라는 개념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소득의 문제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왜 소득은 반드시 전일제 임금노동을 통해서만 얻어야 하는가. 돌봄, 지역사회 참여, 사회적 활동처럼 공동체에 기여하는 다양한 활동도 소득과 연결할 수 있다. 기본소득과 참여소득, 활동소득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 시대의 노동 전환은 일자리를 빼앗기거나 새로 만드는 문제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다.
“무엇을 ‘일’이라고 부를 것인가?”
“사회에 기여한 가치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
이제는 ‘일이 있느냐, 없느냐’를 묻는 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 일은 우리 사회에 어떤 가치를 만들고 있습니까?”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직업을 말해야 ‘일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회를 넘어, 내가 공동체에 기여하는 모든 활동을 당당하게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
그것이 AI 시대에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일의 전환’이다.
그리고 중증장애인의 권리중심 일자리는 그 전환의 가장 앞자리에서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이 하는 일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습니까?” <김경미/ 사단법인 제주장애여성시민연대 상임대표(전 제주도의회 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