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글쓰기 선생이 되었다. 서정주 시인을 기리는 미당시문학관과 시니어스고창타워가 함께 하는 ‘미당시인학교’ 과정이 끝나던 지난 늦가을부터였다. 문학관 상주 시인의 강의를 들으며 시를 접한 수강생들은 아쉬움을 토로하며 내가 나서주기를 요청했다. 시나 수필 쓰기를 처음 접하는 이들로 미국에서 살다 역이민 온 시니어가 대부분, 오십여 년 잊고 살던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새삼 빠져들던 때였다.
상기된 얼굴로 조르는 흰머리 소녀들을 핑계로 나도 공부하자는 생각에 함께하기로 했다. ‘글소리’라는 이름도 지었다. 이름에 맞게 시를 낭송하고 수필을 읽으며 순우리말과 사투리에 묻은 고어의 매력을 공유했다. 차츰 시와 수필을 써오기 시작하고 서로 합평이라는 걸 해보며 시간이 쌓여갔다. 싹이 움터 연록의 이파리를 피워올렸다. 같은 소재로 쓴 시와 수필을 골라 매주 이야기하는 것에도 재미가 붙었다. 때로 동일 주제로 숙제를 내기도 했다. 좌충우돌 살아온 삶의 궤적이 깊숙이 스며있는 글은 그 자체로 유쾌하거나 감동적이었다. 묘하게 글 내용이 닮아서 웃고, 시각이 너무 달라서 토론하기도 했다. 같은 대상을 두고 사색의 농도가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하고 그래서 작품세계가 풍요롭고 다양해지는 것임을 함께 나누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나온 귤꽃 얘기에 제주에 가기로 의기투합했다. 금색 귤이 달린 귤밭만을 연상할 뿐 하얀 귤꽃이 흐드러진 봄날의 귤밭은 생각지도 못한 터였다. 그 진한 향기 속으로 문득, 들어가 보고 싶었다. 제주에 발을 딛는다는 기대감은 최고조였고, 준비는 내 몫이었다. 이들은 제주를 가본 적이 없거나, 오십 년 전의 제주를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었으니, 가기로 한 날부터 설렘에 잠을 설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일곱 명 중 최고령은 구십 이세요, 팔십 중반이거나 칠십 대 후반이었으니. 주변의 걱정스러운 눈길도 당연했다.

3박 4일의 여정을 짰다. 여행자의 체력을 고려했지만, 꼭 가보아야 할 명소는 챙겨 넣었다. 일정을 조정하며 진행하면 되는 일이었고 계획은 탄탄해야 하므로…. 드디어 햇살이 빛나던 어느 아침, 비행기는 구름을 헤치며 하늘을 날았다. 오밀조밀 그림 같은 제주 땅이 보이자 “오 마이 갓!” 연신 탄성을 지르며 창에서 얼굴을 떼지 못했다.
삼성혈(三姓穴)을 1번 코스로 잡았다. 신화의 땅 제주는 만 개가 넘는 신당이 산재했고 설화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중 유명한 설화의 하나가 삼신인(三神人) 신화이다. 나 또한 수십 년 전 기억을 되살리며 전설적인 신화의 흔적을 어서 보고 싶었다. 구도심에 있어 접근성이 좋은 덕에 공항에 내리자마자 삼성혈로 향했다.
삼성혈은 4,300여 년 전, 제주인의 시조인 삼성인, 즉 고을 나, 양을 나, 부을 나 세 성씨가 용출한 장소이다. 신성한 한라산의 기운이 내린 이곳에서 동시에 태어난 삼신인은 수렵 생활을 하다 우마와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온 벽랑국 삼 공주를 맞이하게 되었고, 비로소 농경 생활이 시작되면서 탐라왕국(耽羅王國)으로 발전했다는 것. 세 개의 지혈(地穴)에서 생명이 시작되었음이 경이롭다. 푸름에 덮인 지혈과 몸피 검은 신령스러운 숲이, 고요 속에 우거져 차분하고 겸손해진다.
돌아 나오는 길, 다시 나란히 서서 삼성인이 솟아난 세 개의 지혈을 바라보았다. 이 지혈은 주위가 수백 년 된 고목으로 둘러싸여 있고 모든 나뭇가지가 혈을 향해 경배하듯 허리 숙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움푹 파인 지혈에는 아무리 많은 비가 내려도 물이 고이지 않으며 폭설에도 눈이 쌓이지 않는다니 참으로 신기한 성혈이다. 한라산 아래 펼쳐진 검은 화산암, 시리도록 푸른 에메랄드빛 바다. 검으스레한 숲이 주는 경외감. 봉긋봉긋 솟은 오름들…. 이색적인 풍광에 신비로운 이야기가 어우러진 제주는 늘 아름답고 매력이 넘친다.

토속 음식 고기국수로 늦은 점심을 먹고 다음 여행지로 달렸다. 거리에 늘어선 야자나무를 보자, 미국의 풍경을 떠올리며 떠나온 삶터에 대한 그리움을 숨기지 못한다. 그러다가도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먼나무 이름에 파안대소하며 제주 속으로 들어간다. 한라산과 섶섬이 저 멀리 보이는 펜션에 머물며, 에코랜드, 제주현대미술관, 이왈종 미술관, 이중섭의 집, 사려니숲, 산방산, 송악산 올레길, 추사기념관, 김영갑 갤러리, 섭지코지, 방주교회…. 노익장들이 빽빽한 일정을 청춘 같은 기개로 기분 좋게 치러냈다. 놀랍고도 자랑스러운 여정이었다. 글쓰기 재미에 빠진, 자칭 ‘병아리 문인’들은 틈날 때마다 얘기한다. 스스로 해냈음에 대견하고 제주의 아취가 흐르는 속살을 보았음에 행복하다고. 또 하나의 그리움을 품은 아련한 얼굴로 일생 최고의 여행이었노라고, ‘어미 닭’이라 이르는 내게 말한다. 귤꽃 향에 홀려 나선 여행이었지만, 아직 일러 피지 않은 귤꽃을 향한 아쉬움은 스러지고 없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아 사 년여의 고창 생활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왔다. 매주 들랑날랑하던 자리, 아내, 며느리, 엄마의 자리를 채우는 중이다. 얼결에 3도 4촌의 홀로살이를 누렸고, 귀한 역사 문화 현장을 답사했으며, 지역 예술인들과 교유하며 문화적 갈증을 해소한 시간이었다. 살붙이 같은 친구들과 꽃잎처럼 고운 추억을 쌓았고, 커뮤니티가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며 성취를 걷어 올리는 즐거움이 있었다.
글소리 제주 여행은 고창과의 이별 여행이었거나, 삶의 어느 시기를 결산하는 의미 있는 통과의례 같은 것. 그 여행길에 버선발로 달려 온 제주 수필가들의 깜짝방문은 여정을 빛내주는 샛별이었고, 포근한 우정은 오름 위로 솟는 붉은 만월만큼이나 소담스러웠다.
이토록 충만했던 시간은 흘러 어디에 쌓여 있을까. 움쑥움쑥 그리움의 씨앗이 움튼다. 고창과 제주의 시간이, 풍경이, 사람들이 하냥 그립다.

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는...
나만의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깊은 사유로 주변을 바라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보태려 했던 것은, 문화재와 어우러지는 봉사활동이었다. 창경궁을 둥지 삼아 ‘우리 궁궐 지킴이’로 간간이 활동 중이다.
이곳저곳을 둘레둘레, 자박자박 쏘다닌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레를 걷고 오름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사색의 오솔길을 오가며 사람 내 나는 이야기, 문화재나 자연 풍광, 처처 다른 그 매력을 소소하게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약력>
2016년《수필과비평》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원, 제주《수필오디세이》회원
수필집 《우리, 수작할까요》 발간

부씨는 드물지만 고씨나 양씨는 주변에서 종종 만나지요.
신화의 후손이라는 게 신기했는데
삼성혈을 보니 경외감이 옵니다.
글쓴느 어르신도 그렇고 함께 한 여행이 참 귀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