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울한 숲, 새천년 비자림으로 들어섰다. 경이롭고 신비하다. 입구에서부터 기분 좋은 향기가 포근하게 감싼다. 붉은 송이(scorid) 가 있는 산책길을 따라 자박자박 걷는다. 상쾌한 산림욕은 덤, 심신이 평온해진다. 오백 살, 팔백 년을 살아온 비자나무들이 빽빽이 줄지어 선 모습은 압도적이다. 서늘한 숲에는 천년 세월이 녹아들어 숲의 정령이 스르륵 다가설 것 같아 두리번거린다.
세계 최대라는 자생 비자림에는 다양한 수종이 공생한다. 단풍나무, 후박나무를 비롯해 수많은 나무가 적절한 거리를 두거나 엉킨 채 동거한다. 풍란, 콩짜개란, 비자란 등 희귀란과 각종 식물도 자란다. 그런 연유로 거대한 숲의 웅장함 아래 아기자기한 정겨움이 수런거린다. 풍요로운 생명의 숲, 그 은밀하고 너른 품에는 많은 생명체가 깃들어 산다. 우거지다 못해 어둑한 숲의 속살엔 심해의 적막 같은 깊은 고요가 치유의 손길되어 흐른다. 힐링을 넘어 생명을 살리는 숲, 몸이 먼저 알아챈 안온함이 영혼으로 스민다.
걷다 보면, 2000년 1월 1일 밀레니엄을 기념해 ‘새천년 비자나무’로 지정한 거목을 만난다. 고려 때, 태어났으니 천여 살을 살고 있다. 훤칠한 풍채에 줄기 둘레는 성인 네 명이 팔을 둘러 잡아야 할 만큼 당당하다. 힘차게 뻗은 근육질 가지와 우람하게 땅을 딛고 선 뿌리의 굳셈은 비자림의 터줏대감답다.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을 풍기는 이 신목(神木)으로 하여 숲의 신비감은 한결 깊어진다. 넉넉하게 펼친 근육질 팔뚝, 울룩불룩한 등걸 가까이 서니 세상사 번잡함이 한낱 티끌이다.

아는 대로 밀레니엄은 천년을 이른다. 제3천 년 기의 시작이자 21세기의 시작은 2001년이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2000년 첫날을 시작일로 축하했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면서 앞 숫자가 2로 바뀌는 탓에 '새천년'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다가온 것. 이런 연유로 1년을 앞당기는 일이 벌어졌고, 이날을 '뉴밀레니엄 데이'라고 불렀다. 제3천 년 기의 시작을 살아생전에 맞이한다는 벅참과 흥분에 지구촌은 한껏 들떠 출렁거렸다.
나라마다 경쟁하듯 새천년 맞이 행사를 쏟아냈다. 파도타기 하듯 시차 따라 환호하는 지구촌 사람들의 얼굴에는 희망 섞인 희열이 몽글몽글 터졌다. 나 또한 시대적 분위기에 쏠려 평화롭고 근심 없는 새로운 세상이 올 것처럼 설렜다. 지자체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구청 총무과에 근무하던 때였다. 미지의 그 무엇과 마주하리라는 부푼 계획을 안고 안산(鞍山) 꼭대기 봉수대에 올랐다. 붉은 여명이 산그리메를 숨긴 어둠을 걷기도 전, 얼어붙은 재넘이 바람을 가르며 가풀막을 터덕거렸다. 함께 모여 새로운 세상을 열 듯, 어디엔가 고하듯 큰 북을 쳤다. “둥! 둥! 둥!” 북소리는 산봉우리에 파동을 일으켜 산하를 울리며 산 아래 잠든 사람들에게로 퍼졌다. 새천년의 찬란한 해맞이는 참으로 춥고도 벅찼다.

천년을 천번 만번 건너왔을, 오래되고 광활한 우주이나 밀레니엄에 환호하는 건 기원후 근현대를 살아온 인류가 처음이 아닐까. 천년 앞서 살았던 사람들에게도, 새천년의 들뜸이 있기는 했을까 자못 궁금하다.
우리나라 연대만을 헤아려보자면, 제1천 년 기는 까마득한 온조와 박혁거세 시절이었다. 제2천 년 기는 고려 목종 조였고, 제3천 년 기의 시작은 김대중 대통령 때였다. 끊임이란 없이 이어 흐르는 시간의 영원성으로 보자면, 천년 대의 획을 긋는 시점이 별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시간 정보 공유가 가능한 시대를 사는 우리는 거기에 특별함을 부여하며 웅비하는 감정을 나누었다. 어찌 보면 세기말의 나른함을 버리고 인류가 함께 새로운 꿈을 꾸며, 공감하는 시대적 연대가 아닐까 싶다.
어느덧 25년이 흘렀다. 떠들썩하던 인류는 언제 그랬던가 싶게 덤덤하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참혹하고 명분 없는 전쟁의 고통과 예측할 수 없는 국제 정세의 혼란스러움, 인간의 지성을 넘어서는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내느라 지치고 버거운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비자림 그 청량한 숲으로 들어가고 싶다. 적요 속에 침잠해 새해를 살아갈 추동력과 열망을 채워 새날을 맞이하고 싶다. 만만치 않은 시류에 휘둘리던 소외와 공허함을 달래 줄 그 무엇이 간절하지 않은가. 생명이 충만한 숲의 기운으로 불타오르는 축복의 붉은 태양을 품어 안고 싶다.
치유의 정령이 깃든 숲이기에, 무언가 쑬쑬한 싹을 틔워 줄 씨앗이 필요하기에…. 더불어 가자, 그곳으로.
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는...
나만의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깊은 사유로 주변을 바라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보태려 했던 것은, 문화재와 어우러지는 봉사활동이었다. 창경궁을 둥지 삼아 ‘우리 궁궐 지킴이’로 간간이 활동 중이다.
이곳저곳을 둘레둘레, 자박자박 쏘다닌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레를 걷고 오름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사색의 오솔길을 오가며 사람 내 나는 이야기, 문화재나 자연 풍광, 처처 다른 그 매력을 소소하게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약력>
2016년《수필과비평》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원, 제주《수필오디세이》회원
수필집 《우리, 수작할까요》 발간

술렁술렁했지요.
오래된 숲 비자림의 신비로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