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에는 걸출한 외모를 자랑하는 바위들이 별처럼 많다. 그중 제주에서 처음 만난 바위는 용두암 龍頭岩이다. 하얀 물거품이 노을빛에 물들어가는 바닷가에 우뚝 선 바위, 용머리 닮은 범상치 않은 자태라니…. 거친 화산석 사이로 마주 섰을 때의 떨림이 생생하다. 하늘에 닿고 싶은 몸짓인지, 펼치지 못한 꿈의 조각들이 승천의 몸부림인 양 꿈틀거린다.
예부터 별나고 아름다운 것은, 탐내는 이가 많은가, 폭풍이 휘몰아쳐 바위를 훔쳐 달아나는가 하면, 관광객의 못난 손길이 욕심을 내기도 한다. 내가 처음 보았을 때는 용두암까지 내려가 만져볼 수 있었고, 심지어는 올라앉기도 했다. 무지한 일이었으나 그땐 그랬다.
용두암과 아름다운 용연 龍淵. 스치는 바람결에 내 젊음과 설렘이 아직도 조금은 묻어 있으려나. 용두암의 솟구치는 실루엣이 가리키는 어디엔가 신혼의 꿈이 영그는 무엇이 있을 것 같았다. 검은 돌밭을 한발 한발 디디며 용두암 발밑까지 내려가 올려다보았다. 바위의 위용은 대단했다. 몸을 비튼 채로 힘차게 내달리는 말처럼 검은 갈기를 흩날리고 있었다. 바위 머리에 올라 두 팔을 펼치면 풋풋한 꿈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용두암은 오륙십만 년 전 분출된 용암이 흐르고 난 뒤 남은 용암 수로가 거친 파도에 침식되면서 형성된 지형이다. 높이가 십여 미터에 이르지만, 보존을 위해 멀리서 바라보자니 실제보다 작아 보인다. 이 용두암은 거대했던 몸체가 굴러 내려오면서 작아졌으리라는 설이 있고, 용암이 위로 뿜어 올라가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자연유산이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이 바위에 전설이 없을 수 없으렷다. 한라산 신령이 품은 옥구슬을 가지면 승천할 수 있다는 것을 안 용이 옥구슬을 몰래 훔쳐 하늘로 승천하려 했단다. 이를 안 한라산 신령이 화가 나 활을 쏘았다. 몸은 바닷물에 잠기게 하고 머리는 하늘로 향하게 하여 용을 떨어뜨렸으니, 그만 그대로 돌이 되고 말았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내 것이 아닌 것은, 끝내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바위조차 말하고 있으나, 아직도 숱한 바위가 생겨나는 것은 아닌지.
고즈넉하던 용두암 주변은 세월 따라 많이도 변했다. 용두암에서 도두항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에는 다양한 카페와 맛집이 늘어섰다. 명물로 떠오른 카페촌에서 커피 한잔을 받아들고 바닷길을 따라가면 이호 해수욕장과 하귀 해변, 애월까지 이어진다. 용두암에서 애월에 이르는 북제주의 해안도로는 풍광이 아름다워 찾는 이 많은 드라이브 코스다. 공유하는 문화를 따라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이 시류이니 앞으로는 어떤 모습을 만들어 보여 줄지도 궁금하다.
그런가 하면, 유유히 휘돌아나가는 인천강을 굽어보며 어제도 오늘도 그대로인 바위도 있다.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고창 병바위가 그렇다. 그 특별한 생김은 억겁의 세월을 품은 화산 암체가 침식·풍화되면서 독특한 지형 경관을 보여준다. 금 소반에 옥 술병을 차려놓고 신선이 술에 취해 누워 있는 형국의 명당이라 하는데, 그에 따른 전설이 곳곳에 스며있다. 이곳은 지질공원에다 국가 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된 전북 고창의 명소다.

쟁반 모양 바위를 이고 있는 선인봉 자락 병바위 앞으로는 생태문화 탐방길이 이어진다. 신선들이 둘러앉아 술을 마신 소반 바위를 비롯해 신선이 술을 마시려고 말 타고 내려와 안장을 얹어두고 탕건을 벗었다는 안장 바위, 술 취해 잠든 신선을 말이 울며 깨웠다는 마명바위, 그 울음소리가 시끄러워 말에게 재갈을 물려버렸다는 재갈 바위와 함께 병풍바위, 형제바위 등 아홉 개의 바위 군이 있어 인근 마을은 구암리 九岩里라 부른다.
이름에서 풍기듯 병바위는 산자락에 호리병을 뒤집어 꽂아놓은 모양새다. 까마득히 먼 어느 날, 선인봉의 소반 바위에 신선들이 모여 잔치를 벌였더란다. 거나하게 취한 신선들이 술에 취해 자다가 그만, 술병을 걷어차는 바람에 병이 날아가 거꾸로 꽂혔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방향에 따라 어르신 얼굴이었다가 술병이었다가 변검 같은 재주를 부리며 선운사와 미당시문학관과 서해 너른 갯벌로 달려가는 이들을 배웅하듯 바라본다.
옥빛 바닷바람에 야위어가는 용두암, 푸른 솔숲을 등에 두르고 하염없는 세월에 닳아가는 병바위. 가까이든, 멀리서 감상하든,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 형상에 설레고 거기에 숨은 이야기에 끌린다. 언제든 한달음에 달려가 우람한 병바위 아래 설 수 있지만, 용두암을 보기 위해서는 꽤 몽그려야 함이 아쉽기만 하다.
억새가 새초롬히 피어나는 초가을, 내 젊은 시간과 풋풋한 꿈 조각이 고여있는 용두암 바닷가로 달려가고 싶다. 광활한 바다로부터 울부짖으며 달려오는 시원한 파도와 하늘을 향해 비상하고 싶은 용두암의 몸짓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싶다.

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는...
나만의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깊은 사유로 주변을 바라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보태려 했던 것은, 문화재와 어우러지는 봉사활동이었다. 창경궁을 둥지 삼아 ‘우리 궁궐 지킴이’로 간간이 활동 중이다.
이곳저곳을 둘레둘레, 자박자박 쏘다닌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레를 걷고 오름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사색의 오솔길을 오가며 사람 내 나는 이야기, 문화재나 자연 풍광, 처처 다른 그 매력을 소소하게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약력>
2016년《수필과비평》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원, 제주《수필오디세이》회원

용두 암이 참 신기하고 멋져보였지요.
지금도 멋지지만 좋은 데가ㅣ 너무 많이 생기다보니 조금 쳐진 감은 있지요.
추억을 불러주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