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함께 걸어 길을 만드는 곳에,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
11월 하순 같지 않게 온화한 기온이 계속되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서 멀리 일본 도쿄에 거주하는 친구는 눈 덮이지 않은 후지산을 보며 걱정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며칠전까지 한라산 역시 꼭대기가 하얗지 않았다. 그러더니 평탄한 길을 가다가 절벽 낭떠러지에 갑자기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급격하게 기온이 하강했다. 급격한 기온 하강은 단지 추위만을 몰고오지 않는다. 느닷없이 쏟아지는 비와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치는 바람과 쾌청한 하늘과 돌멩이를 내던지는 것처럼 마구 내리꽂는 우박까지. 그리고 역시 이런 자연 현상은 가장 낮고 힘겨운 곳에 재앙을 뿌린다. 이 모든 재해는 해고 노동자들이 고공농성 중인 곳에서 지상보다 강력한 형태로 밀려올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었다.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정책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논리와 예의는 갖추었던 공화당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트럼프는 마치 ‘조커’라도 된 듯, 언행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희화화하며 모두를 희화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사회적약자들을 겨냥해 공격을 감행한다. 과거 히틀러가 우아하고 우월하게 포장한 민족성을 명분으로 분류하여 살상을 감행했다면 트럼프는 비용을 내세워 선을 긋고 기준 이하의 존재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하고 있다. 총과 칼을 쥐고 있지 않지만 살상하고 있다. 사회적약자들이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을 만들고 그들을 혐오하는 극우 세력의 힘을 키워내어 그 힘으로 저지르는 무수한 악행을 묵인함으로써, 사방을 죽창 밭처럼 만들어버렸다. 요 며칠은 관세 문제로 들썩인다. 이해할 수 없었던, 트럼프 당선을 기원하던 우리나라 내 극우들은 이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가끔 사람에게 비용 딱지 붙이는 이들의 신념 같은 지지와 신앙 같은 간절함의 뒤통수를 때리는 사건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생각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더하여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60일간 휴전을 맞이하게 됐다. 전문가들조차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각자 이기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세가 한반도를 둘러싼 공포를 이용하는 형세다. 현재 북한과 남한은 과거 6․25 전쟁의 참혹한 기억이 각인된 세대가 아직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휴전 중일 뿐이다. 그리고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는 공포를 러시아와 미국(우크라이나를 내세운)은 한 치의 양보 없이 되살리고 있다. 이제 세상은 명분조차 만들 생각도 않아 뻔뻔한 얼굴로 비겁하고 잔인하게 비용 처리에만 골몰한다.
국내에서는 대통령부터 거대 양당의 대표까지 모조리 스캔들에 휩싸여 있다. 신기하게도 이 막강한 권력 트라이앵글은 서로를 물어뜯기도 하지만 자기 살을 뜯어 먹고도 있다.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흔한 말의 구체적 형상화를 보는 듯해서 흥미롭게 역겹다. 역겨워 세상 절망적 풍경에 허무해져서 서성이면, 이 모든 뉴스에 묻히고 가려졌지만, 여기저기에서 홀씨 같은 시국 선언문이 절절하게 날아왔다. 또다시 걸어야 하는 현실이지만, 다시 꿋꿋하게 걷고 시민들의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 박정혜, 소현숙 두 사람이 구미 공장 옥상에서 고공 농성을 325일 넘게 이어가고 있다. 그들이 그곳에서 살아가며 버티며, 온갖 기후 재난을 직격탄으로 맞으며 잠들고 먹고 배설하는 모든 것, 사소하게 보이지만 생을 유지하기 위해 너무나 중요한 거의 모든 것들이 거의 모든 시간에, 이 일상이 훼손당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 외롭고 지난한 투쟁의 고통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상상조차 할 수 없어 서성이고만 있을 때, 다시 걷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진숙과 박문진이 나란히 걸어왔다. 조용히 소문을 듣고 시민들이 모여들어 같이 걷기 시작했다. 길고 멀어 힘겨울 걸음은 고공에서 투쟁 중인 동지들 생각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어 같이 걷는 이들의 힘찬 마음으로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튼튼한 끈이 되고 밥이 되고 지붕이 되었다. 살리러 가고 살아가고 있다. 걸으며 고공투쟁의 현장으로 나아갈 때, 다정한 신념으로 얽힌 우리는 그 누구도 비용 처리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하여,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 살고 있다. <한정선 / 소수자 활동가 및 작가>
[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은...
'작은 사람'이란 사회적약자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구조적 차별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힘든 여성, 노인, 아동, 청소년, 빈곤,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더 나아가 동물권까지 우리나라에서 비장애 성인 남성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구조적 차별과 배제의 현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부장제 하의 남성은 '맨박스'로 괴롭고 여성은 '여성혐오'로 고통을 받습니다. 빈곤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침범하여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공장식 축산은 살아 있는 생명을 사물화하고 나아가 단일 경작 단일 재배 등을 통해 기후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적약자의 소수자성이 교차될수록 더욱 삶이 지난해지고 그 개별화된 고통의 강도는 커집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제가 겪고 바라본 대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우울하게,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양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감사하게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