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새 각시도 아닌디요.” 하며 손사래 치는 엄마를 시어머니가 마주 앉히고는 곱게 분단장해 드렸다. 농사짓고 집안일 하느라 언제라고 몸치장할 새가 있었던가. 아침이면 치마 허리끈을 질끈 동여매거나 ‘몸빼’를 꿰어 입고 하고많은 날 논밭으로 뛰셨으니…. 자꾸 일어서려는 엄마 어깨를 살짝 누르고는 내친김에 머리 손질을 시작하셨다. 시어머니 손길 따라 뽀글뽀글하던 머리가 굼실굼실 우아하게 변신했다. 엄마는 거울 속을 들여다보시더니, 사돈 덕에 시집가도 쓰겠다며 시어머니 두 손을 포개 잡았었다.
〈윤석례 여사님 칠순 축하〉, 화사한 색감의 현수막이 걸렸다. 걸게 쌓은 잔칫상 한가운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엄마가 앉았다. 화장이 쑥스러운 듯 엄마는 양 볼을 만지곤 하셨지만, 어쩌면 흘러간 지난날을 떠올리며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는 것인지도 몰랐다.
자손들은 엄마께 큰절하며 덕담을 올렸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두런두런 정담을 나누던 하객들이 축하 노래를 부르는 사이, 조카 녀석이 엄마를 등에 업었다. 바바리 자락을 휘날리며 겅중겅중 장내를 돌았고, 엄마의 자줏빛 한복 치마도 덩달아 살랑거렸다. 그렇게 잔치마당은 무르익어갔다.
다음 날, 바쁜 형제들은 각자 일터로 돌아갔다. 여동생과 우리 가족이 엄마와 함께 제주 여행길에 올랐다. 딸 소용없다는 말은 우릴 두고 하는 소리가 분명했다. 딸년들은 건듯하면 다니는 제주에 칠십 평생 처음 모시고 갔으니….
마침 초겨울이라 풍요롭게 익어가는 귤밭으로 들어섰다. 그때는 너도나도 귤밭 속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던 때였다. 엄마는 상기된 얼굴로 주렁주렁 열린 황금빛 귤을 어루만졌다.
“내가 봐도 좋구만, 주인 양반은 얼매나 오지겄냐. 어쩐다고 어깻죽지가 찢어지게 달렸으까.”
처음 보는 드넓은 귤밭 풍경에 엄마는 고랑을 오가며 신기해하셨다.
어느새 시어머니의 칠순이 다가왔다. 엄마와는 띠동갑이니 십이 년이 흐른 것. 이번에는 엄마가 서울로 오셨다. 여느 때처럼 한방에 나란히 누워 도란거리시곤 했다. 듣고 있자면 매번 일관성 있게 대화를 주고받는 것은 아니었다.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마무리는 머리를 끄덕이며 공감하셨으니 알 수 없는 대화법에 우리 가족은 웃곤 했다. 아무러면 어떤가, 어렵다는 사돈지간인데, 두 분은 사이좋은 자매처럼 그렇게 지내시니 좋았다.
회갑 때 유럽을 보내드린 터라, 칠순 여행은 제주로 길을 잡았다. 5월의 제주는 푸르고 매력적이었다. 제주만의 독특한 풍광 속에 안겨있는 에코랜드로 달려갔다. 미국의 첫 증기기관차를 모델 삼아 탄생한 에코랜드 기차는 고풍스럽고 이국적이었다. 색깔별 이름에도 의미를 담았다. ‘레드 샌드’는 화산 송이를, ‘그린 포레스트’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끈질긴 생명의 힘으로 만들어낸 곶자왈의 숲을, ‘블루 스카이’는 제주의 하늘을 상징한단다. 순환선이라 원하는 역에 내려 놀다가 다음 기차를 타면 되니 자유롭고 편했다. 낭만적인 기차를 타고 달리노라면, 동화 속 어느 행복한 나라에 닿을 것만 같았다.
‘에코브릿지’에 내리자, 그림 같은 숲을 품에 안은 넓은 호수가 펼쳐졌다. 그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반영은 가벼운 물비늘에 꿈결처럼 흔들거렸다. 말을 키웠다던 넓은 목초지가 시원스러운 ‘레이크시티’는 간간이 서 있는 유럽풍 집들이 어우러져 목가적이고 여유로웠다. 다리 아픈 것도 잊어버린 듯, 시어머니는 앞서 걸으며 여기저기 둘러보셨다. 참 좋구나, 연신 감탄하다가도 엄마를 모시고 왔어야 한다며 아쉬워했다. 그날, 곶자왈의 숲은 눈부시게 푸르렀고 그 푸름은 힐링의 물길 되어 마음 안으로 흘러들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귤밭은 햇살이 비껴들어 아늑하다. 뒤편 한라봉 이랑에도 진초록과 황금빛이 넘실거린다. 포토존에 앉아 웃던 엄마가 어디엔가 계실 것만 같은데, 잎새 사이 유난스레 마주 열린 한라봉이 눈길을 잡는다. 주름진 얼굴을 서로 바라보는 두 분 같아 애틋하다.
이십 대에 홀로 된 데다 늘 허약한 시어머니를 안쓰러워하던 엄마,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육 남매를 건사하며 굴곡진 삶을 살아내신 엄마를 따뜻이 위로하던 시어머니. 두 분은 평생을 서로 다독이고 의지하며 지내셨다. 아흔아홉 해, 엄마가 기나긴 여정을 접고 흩날리는 꽃비 속에 떠나신 지도 3년. 어느덧 구십이 되신 시어머니는 아련한 눈길로 옛일을 그리워하신다.
이제 이 딸내미의 보고픔은 모르시는가, 엄마는 꿈길로도 오실 줄을 모른다. 환한 얼굴로 가붓가붓 손 흔들며 가시던 어느 꿈 이후로…. 속절없이 향기로운 귤밭 고랑에는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만 여울져 흐른다. <수필가 배공순>
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는...
나만의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깊은 사유로 주변을 바라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보태려 했던 것은, 문화재와 어우러지는 봉사활동이었다. 창경궁을 둥지 삼아 ‘우리 궁궐 지킴이’로 간간이 활동 중이다.
이곳저곳을 둘레둘레, 자박자박 쏘다닌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레를 걷고 오름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사색의 오솔길을 오가며 사람 내 나는 이야기, 문화재나 자연 풍광, 처처 다른 그 매력을 소소하게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약력>
2016년《수필과비평》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원, 제주《수필오디세이》회원

엄마의 향수에 마음이 같이 찡해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