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의견 '묵살' 충격...정부관계 악화 '딜레마'...남은 카드는?
해외 출장을 갔다가 1일 귀국한 우근민 제주지사가 큰 충격과 함께 딜레마에 빠진 듯, 아무런 말이 없다.
보통 외국 출장을 갔다 오면 출장결과 설명을 위해서도 기자실을 방문하곤 했으나 이번에는 이 과정도 생략했다.
정부가 29일 국가정책조정회의를 통해 발표한 제주해군기지 건설공사 강행방침에 대해 큰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귀국 후 관계관으로부터 정부 발표내용에 대한 상황보고를 받은 후, 줄곧 '듣기만 하는' 일정을 가져나가고 있다.
정부의 국가사업 발표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장이 가타부타 아무런 입장표명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정부방침을 따를 수밖에 없다든지, 아니면 정부방침이 뭔가 잘못됐기에 '항명'을 해야겠다든지 하는 간접적 표현조차 없다.
2일 낮, 잔뜩 화가 난채 제주도청으로 달려온 강정주민 대표자들을 면담할 때에도 우 지사는 대부분 주민들의 의견을 듣기만 하며, 답답한 심경만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정부의 발표내용에 대해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는 말을 서두에 꺼냈다.
주민 대표들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망설일 때가 아니다. 지사께서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압박하자, 나온 말이다.
우 지사는 "정부발표가 있기 하루 전날 회의자료는 도청으로 전달됐으나, 이번 정부의 결정에 대해 사전에 통보를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발표내용이 예상했던 것보다 '일방향적인' 강도가 매우 컸음을 의미한다.
우 지사는 2일부터 '의견 수렴'에 나서고 있다. 도민들로부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듣고 입장을 정리할 생각으로 알려졌다.
2일 강정주민 대표자를 면담하기 직전에는 제주시내 한 음식점에서 제주도의회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원내교섭단체 정당 대표들과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도의회의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서도 우 지사는 별 말이 없었다고 한다. 의원들의 얘기만 듣고, 답답한 마음을 피력한 정도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도의회 역시 이번 충격파가 매우 컸던 듯, 즉석에서는 원론적인 얘기만 나왔을 때 구체적인 대응방안까지는 협의하지 못했다고 참석했던 한 의원은 전했다.
우 지사는 언론사 대표, 종교계들로부터도 의견을 듣는 자리를 가질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 도의회나 각종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힐 때, '정책의 일관성'과 '원칙과 기준', '소신'이란 말을 줄곧 써왔던 그가 이토록 '낮은 자세'로 도민의 의견을 구하러 다니는 것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딜레마' 빠진 도정...'윈윈해법', 왜 위기를 맞았나
그는 왜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중앙정부라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지방정부가 '논리의 일관성' 상실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이번 정부의 발표내용은 그동안 제주특별자치도가 제기해왔던 문제 내지 논리를 일거에 묵살하는 수준이었다.
그동안 '윈윈해법'이란 틀로 해서 우 지사가 밝혀왔던 것은 크게 두가지 프레임이다.
하나는 민항과 군항이 공존하고, 15만톤 크루즈가 자유롭게 입출항 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의 건설, 다른 하나는 이를 통해 국가이익과 제주발전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임 도정과의 분명한 차이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국가정책조정회의에 따른 입장에서는 이 '윈윈해법'의 틀이 일거에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우 지사가 말해왔던 명실상부한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의 건설도 어렵게 됐을 뿐만 아니라, 제주해군기지 주변지역발전계획을 통한 정부지원도 요청한 수준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무늬만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의견 묵살하며 유감 표명이라도 했나?
그 중에서도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의 경우 제주도가 '생각하는 수준'의 크루즈항이 아닌 현재 수준, 즉 '군항' 중심으로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비록 정부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란 단어를 썼지만, 우 지사나 제주도정은 지금까지 현재의 설계대로는 상당한 문제가 있어 명실상부한 민군복합항 수준이 아님을 제기해왔다.
자체검증을 통해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 맞는지를 따졌던 것도, 설계상 문제가 있는 것이 확인돼 객관적이고 정확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온 것도 이 맥락이다.
우 지사가 기자회견이나 도의회에서 "백년, 천년을 내다보는 명실상부한"이라는 수식어를 써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최소한 지난달 국무총리실 '15만톤 크루즈 입출항 검증위위원회'가 채택한 검토결과 보고서에서 제시한 내용의 문제에 대해서도 명확한 후속조치를 해내지 못한채 막바로 항만공사가 착수될 위기에 처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가정책조정회의가 열리기 이틀전에 총리실에 보낸 검증위의 건의에 따른 선박조종 시뮬레이션을 공동으로 실시하자는 제안마저 묵살됐다는 것이다.
제주자치도는 총리실에 보낸 의견서를 통해 "국방부에서 단독으로 실시한 시뮬레이션 결과자료는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증위의 결과가 나온 후 수행된 것도 아니고, 또 단독적으로 수행한 결과자료는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정부는 제주도가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힌 결과 데이터를 갖고 정책결정의 근거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한 점에 대한 정부의 유감표명 조차 없었다.
제주도의 의견은 완전히 묵살된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났던 크루즈항의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수용하겠다고 한 것은 항로를 변경하고, 항만 내 서측 돌제부두를 고정식에서 가변식으로 조정한다는 것이 고작이다.
이는 제주도가 지적해왔던 사항의 수준과는 거리가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제주도정의 '딜레마'로 이어지게 한다.
그동안 지금의 크루즈항 설계는 문제가 있고, 이를 보완해 나감 속에서 명실상부한 민군복합항을 만들겠다고 공표해 왔는데, 정부는 일순간에 '문제 없음'으로 결론지어버린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강변태도는 '오답'이라고 주장하는 지방정부에 '정답이었다'고 말 바꾸기를 강요하는 것 같은 엄포 수준으로 전달되고 있다.
제주도의 윈윈해법 첫번째로 생각했던 민군복합항에 대해, 제주도는 도민들을 설득할 명분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 함량미달 지역발전사업...'1조원' 포장, 5천억원 국비로 '생색내기'
두번째 윈윈해법으로, 우 지사가 구상했던 해군기지 주변지역발전계획에 대한 정부지원 내용도 함량미달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는 2008년 9월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정부지원을 약속한 사안으로,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지원내역은 1조 771억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11월, 제주도가 49개 사업 1조3676억원(국비 9962억원)을 요구한 것에 비해 턱없이 미흡한 수준이다.
특히 1조771억원 중에는 지방비 1710 억원, 민자 3274억원이 포함돼 있다. 실제 국비는 국비 5787억원에 불과하다.
제주도가 요청한 국비규모는 9962억원인데 반해, 정부는 고작 5787억원만 반영하며 생색내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도 정부는 제주도에 양해를 구한다는 의례적인 발언 한 마디 없었다.
▲ 우 지사의 선택...'중앙정부의 관계'인가, '도민 요구'인가
민선 5기 도정 출범 후, 제주해군기지 문제에 있어 우 도정은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윈윈해법'을 갖고 도민을 설득하고자 했으나, 정부는 이에 부합한 정책동조는 커녕, 오로지 '강행'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도지사가 도민들을 설득할 명분을 잃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제주도를 완전히 배척하고 무시했다는 제주사회의 비난여론이 크게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2일 기자회견을 가진 강정마을회 및 시민사회단체, 제주지역 교수협의회 등에서는 한결같이 정부의 방침결정 과정에 제주의 의견을 묵살한 점을 꼬집고 있다.
"중세봉건왕권시절에도 지방의 수장이 상소를 하면 의견이 반영됐는데도,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특히 지방분권시대를 열어가겠다는 중앙정부가 민선 도지사의 의견마저 묵살했다. 이런 정부의 태도는 독재를 선언함에 다름없다."(강정마을회, 범도민대책위 기자회견 中).
지방의 수장이 '상소'를 올렸는데도 완전히 묵살한 것은 독재정권에서나 볼 수 있는 태도라는 지적이다.
"우근민 지사가 제주도를 능멸하고 우롱하는 정부에 굴복했던 비겁한 도지사가 아니라 제주의 자존을 세웠던 당당한 도지사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바란다."(제주지역 교수협의회 기자회견 中)
교수들 역시 '정부가 제주도를 능멸했다'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바라봤다.
정부의 이번 해군기지 강행방침은 제주의 '자존'을 짓밟거나 능멸한 처사로 규정하고, 제주도당국이 이에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주문한 것이다.
그러나 우 도정은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받았을 법하나, 현재까지 아무런 말이 없다.
국방부 시뮬레이션을 인정할 수 없으니, 정부와 제주도, 국회 공동의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고 곧바로 이의를 걸지도 않았다. 지금 현 상황대로 항만공사를 해서는 안된다는 긴급 요청도 하지 않았다.
최소한 제주도가 요청한 지역발전사업을 왜 반영해주지 않았으냐며 항변하지도 않았다.
정부가 '국가정책조정회의'라는 기구를 통해 결정한 사항이고, 국무총리실에서 대국민 담화형식으로 해 발표된 사항이란 점에서 제주도는 무척 곤혹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지방정부가 곧바로 문제제기로 들어갈 경우 중앙정부와의 관계를 크게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민선 도지사가 정부 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바로 도민이다.
도민들은 이번 정부발표에 대해 해군기지 건설 당위성의 찬반을 떠나 '자존심'의 문제로 까지 해석하며, 제주 자존을 갖고 이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강정마을회는 도지사가 해군기지 사업구역 내 절대보전지역 해제와 공유수면매립허가를 직권취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의 수용여부에 판단은 뒤로 하더라도, 최소한 제주도가 일관되게 요구해왔던 공동 선박시뮬레이션을 통한 재검증 절차를 거치고, 이 재검증 기간 동안 만큼은 공사를 중지시켜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우 지사는 말이 없다. 잠정적으로 5일쯤 상경해서 제주도의 입장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전까지 의견수렴을 통해 대응방법을 모색하겠다는 생각이다.
정부에 강하게 맞서는 모양새로 비춰지더라도 종전과 같은 정책적 입장을 그대로 견지할지, 아니면 정부의 방침을 인정함 속에서 약간의 조정을 시도할지, 아직 알 수가 없다.
결단을 촉구하는 도민사회의 '압박'이 강화되는 가운데, 5일 상경하면서 우 지사가 꺼내들 카드는 뭘까.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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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엄포', 백성들은 닥치고 들어라? |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도지사가 죽기살기로 한번 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