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역신문의 '6일간의 벽신문'..."이것이 진짜 언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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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역신문의 '6일간의 벽신문'..."이것이 진짜 언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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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지진 혼란속 '벽신문' 스토리, 한국어판 출간
윤전기 멈추자 손으로 직접 쓴 벽신문 6일간 발행

"휴간은 하고 싶지 않다. 손으로라도 써보자. 사람들이 신문을 기다리고 있다."

"기자들이 재난을 당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 기자들이 시민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이들이 바로 저널리스트다."

2011년 3월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대형 쓰나미로 동일본 일대가 초토화돼 대혼란이 발생할 당시, 일본의 한 지역신문이 6일간 '벽신문'을 만들었던 이야기의 책자가 한국어판으로도 출간됐다.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 이시노마키 시(市)에서 발간되는 지역신문인 <이시노마키히비 신문>에서 펴낸 '6일간의 벽신문'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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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판으로 출판된 <6일간의 벽신문>.
이번 한국어판은 이상희 제주대학교 외국어교육원 강사와 최낙진 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의 공동번역으로 만들어졌다.

이시노마키히비신문사는 1912년 창간한 석간지이다. 미야기현 동부의 이시노마키시, 히가시마츠시마시, 오시카군 오나가와쵸를 취재 및 배포범위로 해 발행되고 있다.

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기 전 발행부수는 약 1만4000부 정도로 알려져 있다.

국내 언론계에서도 이 신문에 대해 주목하는 이유는 동일본 대지진 발생당시 연속적으로 발행한 '벽신문' 때문이다.

이 신문사는 2011년 3월11일 초대형 지진해일로 인해 신문사의 윤전기가 멈춰서 신문을 정상적으로 발행할 수 없게 되자 다음날인 3월12일부터 17일까지 6일 간 '호외' 벽신문을 제작했다.

동일본 일대는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대부분의 시설물이 파손되는 엄청난 피해를 입으면서 정보망은 모두 차단된 상황이었다.

이시노마키 지방에 있었던 각 언론사 기자들은 영상과 기사를 보내지 못했다. 대피소로 몸을 피한 사람들이 휴대폰 동영상과 라디오로 정보를 얻으려고 있지만 전혀 얻을 수가 없었다.

이시노마키에 있었지만 이시노마키가 어떤 상태인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기자들은 대지진 직후 취재를 위해 각지로 흩어졌다. 기자들끼리도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윤전기는 침수되었고 신문 인쇄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알리지 않으면, 지역신문사의 존재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신문사로 들어오는 최소한의 정보만이라도 전달하자고 뜻을 모아 시작한 것이 바로 벽신문이라고 했다.

지난해 9월 제주언론학회 학술세미나 참석차 제주를 방문했던 이 신문사의 하리이 편집장은 당시 6매의 벽신문 제작경위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히라이 미치코 편집장은 "극심한 혼란 상황 속에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전하고자 했으나 정전으로 윤전기가 돌아가지 않았고, 고민 끝에 신문용지에 글을 유성펜으로 적어 벽에 붙이는 벽신문을 발행키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펜의 손 글씨로 벽신문을 5~6부 만들어 신문사에서 걸어갈 수 있는 대피소에 붙였다고 했다.

벽신문 제작에서 주의를 기울인 점은 재해를 입은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정보를 우선하면서도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허위정보와 유언비어가 난무하면서 의심이 깊어진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로 행동을 하자'고 당부했다. 벽신문은 전기가 복구된 3월17일까지 6일간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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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3월 제작된 '벽신문'. <사진=이시노마키히비신문사/ 제주언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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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일본 대지진 당시 지역 주민들이 '벽신문'을 보고 있다. <사진=이시노마키히비신문사/ 제주언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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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제주언론학회 학술세미나에 참석해 '6일간의 벽신문'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히라이 편집장.ⓒ헤드라인제주
이 일은 언론의 참 역할을 일깨워졌다는 점에서 국내 언론계와 학계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전달의 사명'을 다한 저널리즘의 원형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많은 언론상을 수상했다.

2011년 9월 국제신문편집자협회(IPI) 특별상, 2011년 12월 제59회 키쿠치칸상, 2013년 3월 제20회 사카타 기념 저널리즘상 등을 수상했다.

니혼TV에서는 벽신문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마이니치방송에서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신문박물관인 NEWSEUM에는 벽신문의 6일치 한세트가 영구 보관되고 있다. 2012년 3~4월, 프랑스 파리의 국립기메동양미술관 별관에서는 벽신문전이 열렸다.

히라이 편집장은 이번 '6일간의 벽신문' 한국어판 출판에 즈음한 인사말을 통해 "'6일간의 벽신문'은 동일본 대지진 직후 약 1주일 동안 지역에서 일어난 일과 이시노마키히비신문사의 활동을 기록한 책"이라며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대재난 앞에서 언론인이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 행동에 옮겼다"고 소회했다.

그는 "그 것이 (언론의 재난대응 매뉴얼에서) 큰 참고가 될지는 모르겠다"면서 "그렇지만 대규모 재해가 어디에선가 일어나 독자들이 행동해야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한국 독자 분들께 유사시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고 전했다.

6일간의 벽신문, 패러다임북, 정가 1만3000원.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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