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행태에 있어 '좋은 유권자'와 '나쁜 유권자'
상태바
투표행태에 있어 '좋은 유권자'와 '나쁜 유권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 정경호 / 전 제주도의회 의원

투표의 권리행사는 저마다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른 순전히 개인적인 것이다. 따라서 ‘좋은 유권자’ ‘나쁜 유권자’를 구분 짓는 것은 매우 시건방진 일이며, 나아가 굉장히 위험한 짓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필자가 감히 그것을 구분 짓고자 함은 투표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모르는 유권자가 더러 있기도 하고, 투표행위의 가장 기본적인 본질을 잊고 있는 유권자가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좋은 유권자’ ‘나쁜 유권자’를 구분 짓는 글을 씀에 있어서 객관성과 일반성에 지극히 신경을 쓰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은 순전히 필자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는 점을 밝힌다.

'기권’하는 유권자를 결코 좋은 유권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권은 아예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것을 말하며, 일단 투표장에 가서 어느 후보자의 란(欄)에도 기표하지 않은 투표지를 투표함에 넣는 것하고는 사뭇 다르다. 그런 행태는 마음에 드는 후보자가 없다는 의사표시의 정치행위라 할 것이므로 엄연히 투표의 권리행사를 한 것이다.

그러니까 기권하지 않고 투표장에 가는 것만으로도 좋은 유권자의 첫째 조건을 충족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식께칩 후보’에 투표하는 유권자를 좋은 유권자라고 선뜻 말할 수는 없다. ‘식께칩 후보’란 선거를 위하여 자신과 별다른 관계도 없는 집의 제사를 찾아다니거나, 눈곱만한 인연뿐인 집도 그 가족의 결혼식 장례식 등등에 참석하거나, 자신과의 연관성을 억지로 꿰맨 집단의 기념식 발족식 등등 행사에 얼굴을 내미는 후보를 두고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런 후보에게 정책 자질 능력 등과는 무관하게 투표하는 것은 선량(選良)을 고를 수 없는 나쁜 투표행태라 할 수 있다.

'사탕을 주는 후보’를 경계하는 유권자는 좋은 유권자일 것이다. ‘사탕을 준다.’는 뜻은 유권자에게 달콤한 그 무엇을 주거나 줄 것을 약속한다는 것인데, 중앙정치권에서 심심찮게 회자되는 표플리즘(Populism)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예컨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공무원 일자리를 17만 4천개 늘리고, 공기업의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겠다고 공약했다. 구직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200만 청년유권자들은 더 없는 달콤함으로 환호했다.

그러나 그 청년들은 그 달콤함이 이 삼십년 후엔 자신들의 고통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 늘어나는 공무원과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공기업 근로자의 연봉은 다른 예산을 쥐어짜서 어찌어찌 마련하면 된다고 치더라도 그들에게 평생 지급할 연금은 가히 기하학적인 국가 재정이 필요하다.

이 기하학적인 재정은 지금의 청년과 그 후손들이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아르헨티나 그리스 등등 국가에서 살고 있는 장년층(壯年層) 국민들이 세금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금의 달콤함이 후일엔 고통이 되는 ‘사탕을 주는 후보’의 정책을 경계하는 것이 좋은 유권자의 선택일 것이다.

'큰 그림을 그리는 후보’를 선택하는 유권자는 좋은 유권자일 것이다. ‘큰 그림’은 최소한 삼사십년 후 제주의 모습을 담은 스케치를 말한다. 삼사십년 후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제주도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이며,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어떻게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인가에 고민하고 정책을 내세우며 또한 이를 실천할 의지를 드러내는 도지사 후보가 도민의 선택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임기 내에 그런 것들을 다 완성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의지만 있다면 그런 것들을 거의 모두 실현시킬 수 있는 틀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현안이나 단기정책의 작은 그림을 그리는 후보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작은 그림 보다는 큰 그림을 그리는 후보가 상대적으로 좋은 후보라는 얘기이다. 큰 그림과 작은 그림 모두를 다 훌륭하게 그린다면 그는 더욱 좋은 후보일 것이다.

'큰 조직을 경영해 본 후보’를 선택하는 유권자는 좋은 유권자일 것이다. 제주도정은 실로 거대한 조직이다. 부피뿐이 아니다. 칠십만 제주도민의 삶의 질을 좌지우지하는, 경영에 실패하면 도민에게 재앙도 안길 수 있는 조직이다.

이러한 조직의 경영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다. 최소한 큰 조직을 경영해 본 유경험자에게 맡겨야 한다. 큰 조직을 경영해 본 적이 없는 자에게 맡기는 것은 의대(醫大)를 갓 졸업한 수련의(修鍊醫)에게 환자의 중요한 수술을 맡기는 것과 같다.

'여론에 추종하는 후보’를 선택하는 유권자는 나쁜 유권자일 것이다. 당장의 여론에 밀려 정책이나 제도 등을 바꾼다거나 없애는 도지사가 있다면, 그는 도정철학이 없는 무소신(無所信)의 도지사거나, 아니면 여론의 속성을 모르는 아마추어 도지사일 것이다.

거대한 제주도정을 이끌려면 그에 걸 맞는 철학이 있어야 하고, 목소리 큰 사람의 의견이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을 덮어씌우는 여론의 속성을 모르고 있는 도지사이기 때문이다. 현명한 도지사는 당장의 여론보다 후일에 드러날 여론을 더 존중한다. 이러한 도지사를 선택하는 것이 좋은 유권자의 길이 아닐까 싶다.

'풀리지 않는 의혹을 가진 후보’를 선택하는 유권자는 좋은 유권자라 할 수 없다. 의혹이 풀렸을 때 선택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상(賞) 받는 것에 집착하는 후보’를 선택하는 유권자도 좋은 유권자라 할 수 없다. 마이너 중에 마이너 언론사, 그 정체도 명확하지 않은 단체 등등이 주는 상을 가리지 않고 받아, 그것을 지역의 언론사에 잽싸게 보도케 하는 후보는 수상(受賞)의 목적, 과정, 노림수를 생각해 볼 때 선택하기가 좀 그렇지 않은가? <정경호 / 전 제주도의회 의원>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