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주민 명단 건넨 공무원 '무혐의'...어떻게 이런 반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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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주민 명단 건넨 공무원 '무혐의'...어떻게 이런 반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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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리월드 개인정보 유출사건, 법리적 쟁점은
개인정보법 '규제' Vs 환경부 고시 '인적사항 제공'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제주사파리월드' 개발사업과 관련해, 지난 3월 큰 파문이 일었던 제주특별자치도의 반대주민 개인정보 유출 논란에서 반전이 나타났다.

담당국장까지 나서 '사죄' 입장을 밝히며 거의 일방적인 수세에 몰렸던 제주도정이 31일 "사실과 다르다"면서 공개적 반박입장을 냈다. 5개월 여만에 나온 반론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이날 사파리월드 조성사업 개인정보 유출 고소.고발사건 경찰수사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서면 입장을 밝혔다.

보도자료를 내게 된 배경은 일부언론에서 혐의내용을 사실과 다르게 보도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경찰 수사결과의 '무혐의' 부분을 강조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됐다.

논란이 터져나올 당시만 하더라도 개인정보법 위반 부분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며 고개를 숙였던 제주도정이 상황 대반전에 나선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 사건의 발단은?

최초 개인정보 유출 논란이 터져나오게 된 것은 올해 3월 초.

구좌읍 동복리의 이모씨를 비롯한 주민 56명이 사파리월드 사업에 문제를 제기하며 공청회를 개최할 것을 요구하는 의견서에 이름과 주소 등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서명을 한 후 행정당국에 제출했는데, 이 명단이 고스란히 사업자에게 건네진 것으로 확인되면서 논란은 시작됐다.

당시 제주시를 통해 의견서를 접수받은 제주특별자치도 투자유치과에서는 공청회 개최요건인 주민 30명 이상의 요구가 있다고 판단, 이를 사업자로 하여금 확인하도록 서류를 그대로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의견서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이름과 주소가 기재돼 있었던 것.

공청회를 개최해 달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사업자에게 건넨 것 자체는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반대주민들의 개인정보 유출은 심각하게 다가왔다.

특히 피해를 입었다는 반대주민의 기자회견을 통해, 명단을 건네받은 사업자측은 마을 관계자로 하여금 서명 주민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철회서명을 독촉했던 것으로 전해져 문제의 심각성은 더했다.

사업자가 행정기관으로부터 건네받은 명단을 악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논란으로 이어졌다.

개인정보법에서는 개인정보는 정보주체로부터 동의를 받은 경우가 아니면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반대주민 당사자의 동의없이는 제3자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경우에도 그 이용 또는 제공의 법적 근거, 목적 및 범위 등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관보 또는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게재해야 한다고 돼 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정보를 제공받는 자에게 이용목적, 이용방법, 그 밖에 필요한 사항에 대해 제한을 하거나,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마련하도록 요청해야 한다는 규정도 명시돼 있다.

◆ 고소.고발로 비화...제주도 "명단 불법제공 사죄"

이 문제는 고소.고발로 이어졌다.

의견서에 서명했던 반대주민들은 제주도청 담당 과장 및 담당자, 동복리장 등 8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고소인 대표 이모씨는 "주민명단을 받은 마을이장 등은 신청자를 일일이 찾아가 회유를 하면서, 1차 불법명단유출에 의한 범죄와 이어 2차로 명예훼손 등의 범죄까지 일어났으며 마을 공동체가 금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주참여환경연대도 제주도 투자유치과와 원희룡 지사를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혐의로 처벌해 달라는 고발장을 검찰에 제출했다.

이 단체는 "사업자는 취득한 이 개인정보를 이용해 공청회 철회서명을 받는데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는 사업자 사익을 목적으로 주민의 개인정보를 이용한 것으로, 개인정보를 제공한 투자유치과의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논란이 커지자 제주특별자치도 이승찬 관광국장이 직접 나서 공개적 사과를 했다.

당시 이 국장은 "사파리월드 관련 주민의견서 제공 논란에 대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이번 일에 대해 공식적으로 감사위원회에 감사를 요청하고, 결과에 따라 엄정 조치하겠다. 앞으로는 이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을 유념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만 하더라도 제주도정 역시 주민들의 인적사항이 기재된 것을 고스란히 사업자에게 넘긴 것 자체는 '잘못'이라는 점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 경찰수사 결과는?

그러나 30일 발표된 경찰수사 결과가 발표되자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일단 공무원들의 행위에 대한 '면죄부'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제주지방경찰청이 발표한 수사결과를 보면, 제주도청 과장, 계장, 담당공무원 3명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여부와 관련해 56명의 주민명단을 사업자에게 건넨 행위 자체는 '무혐의'이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사업자에게 명단을 넘길 수 있는 관련규정이 있다는 것이 이유다.

반면 명단을 건네받은 사업자측이 이를 다시 마을이장에게 넘기고, 마을이장이 이 명단을 토대로 반대주민들에게 공청회 요구 철회 서명을 받은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일단 최대 쟁점이었던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 공무원들은 '불기소', 사업자와 마을이장은 '기소' 의견으로 해 검찰에 송치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다만 공무원들의 경우 이 개인정보 유출과 별개로, 동복리 이모씨가 개인적으로 행정기관에 제출한 의견서를 동복리장에게 사본을 건넨 부분은 위법으로 판단하고 송치했다.

결국 공무원들은 가장 큰 쟁점인 반대주민 개인정보 유출에 있어 면죄부를 받게 됐다.

경찰은 왜 '무혐의' 판단을 한 것일까.

경찰은 관련 법률을 검토한 결과 사업자에 개인정보를 넘겨준 것은 근거에 의한 것으로 해석했다.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 38조 '주민 등의 의견제출 방법'에서는 행정기관은 14일 이내에 제출받거나 통보받은 의견 및 공청회 개최 여부를 사업자에게 통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주민의견의 내용을 사업자에게 통지해야 한다는 것으로, '개인정보를 제공해도 좋다'는 해석으로는 무리가 있다.

또 시행규칙에서는 환경영향평가서 초안 주민공람 때에는 주민의견 제출서를 갖추도록 하고 있다. 이 또한 '개인정보 제공 허용'의 조항은 아니다.

결정적으로 '무혐의' 판단을 끌어낸 규정은 법률도, 시행령도, 시행규칙도 아닌 환경부 고시 규정이었다.

환경부가 고시한 '환경영향평가서 작성 등에 관한 규정 32조에서는 공청회 개최 관련 의견을 제시한 사람의 인적사항(성명, 직업, 주소)이 포함돼야 함을 명시하면서 별표의 구체적 작성 방법으로 '성명, 주소'를 명시하는 양식을 제시했다.

제주도가 수사과정에서 이 부분을 어필하며 반대주민의 이름과 주소를 그대로 사업자에게 넘긴 것은 법적 근거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경찰도 이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개인정보 유출 논란의 위법성 판단은 가장 하위 단계에 있는 환경부 고시 규정에서 판가름 났다.

그럼 제주도정은 왜 처음에는 '사죄'를 했다가 뒤늦게 '반론'을 하고 나선 것일까.

제주도 관계관은 이 질문에 대해, "당시에는 경황이 없었다. 나중에서야 차분하게 법률적 검토를 하면서, 의견을 정리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관은 "앞으로 해당 공무원들이 성실히 조사에 임해 무혐의가 되도록 노력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번 개인정보 유출 위법성 법리논쟁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에도 불구하고, 환경부 고시 규정이 결정적 판단근거가 됐다는 점이 주목됐다.

개인정보를 폭넓게 보호하고자 하는 개인정보보호법의 법익, 환경영향평가 의견제출자의 실존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환경부 고시 기준안의 대립 속에서, 기준안의 절차를 우선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 사업자에게 반대주민 인적사항 제공이 합법적으로 일상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제주도 관계관은 "이 규정이 악용의 소지가 있어서  환경부로 개선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한편 제주자치도가 무혐의 결정을 받은 후 내놓은 첫 반론 입장에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논란에 휩싸이게 됐던 부분에 대한 최소한의 유감 표명도 없어 의아스러움을 갖게 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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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 2017-09-01 16:13:42 | 211.***.***.28
사죄까지 한 마장에 유감표명을 다시 할건 아니죠....